아기 예수님을 주님께 봉헌하기 위해서
마리아와 요셉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그들은 그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마침 그때 시메온이 예수님의 가족을 봅니다.
그는 성령에 이끌려 성전에 오게 되었고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기다려 왔던 구원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는 기뻐합니다.
아기의 부모는
자신들의 아기와 여느 아기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시메온은 아기를 두고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표현합니다.
아기가 하느님 구원의 표징이며
이스라엘의 영광이라는 것이
마냥 좋게만 들리지는 않습니다.
그 말은 또한 반대를 받는 표징이라는 뜻도
함께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모두가 원하는 것인데
구원을 가지고 오는 이가 반대를 받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구원을 가지고 오는 이를 반대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구원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시메온은 아기 예수에 대해 예언하면서
마리아에 대해서도 예언합니다.
마리아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구원을 가지고 오는 이를 반대하는 이유는
자기들 마음속 생각이 드러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하느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숨기고 싶은 것이 드러나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것을 드러내는 사람은
그 사람이 누구이던
심지어 구원을 가지고 오는 사람이던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숨겨진 것이 드러나는 과정 없이
내가 원하는 구원만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주시려는 구원은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이며
그것을 위해
지금 내가 하느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먼저 이야기되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숨길 수 없고
언제까지 도망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루라도 빨리 나의 모습을 보는 것이
나 자신에게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아프고 힘든 일이지만
그것을 드러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큰 선물입니다.
어떤 것을 선택할지 고민해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