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고 도미니코 신부
오늘은 주님 성탄 대축일입니다.
우리는 해마다 예수님의 성탄을 기념하지만, 이 성탄의 의미를 어떻게 더 깊이 체험하고, 또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2의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는 성탄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프란치스코는 성탄을 “축일 중의 축일”이라 부르며, 이날 하느님께서 주먹만 한 아기가 되시어 인간의 젖꼭지에 매달리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아기 예수의 탄생일을 그 어떤 축일보다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 속에서 보냈습니다.
아기 예수를 그린 그림을 볼 때면, 그는 그리운 마음에 그 손과 발에 입을 맞추었고, 아기 예수의 처지를 생각하며 가슴이 뭉클해져 실제 아기들에게 하듯이 더듬더듬 예쁜 말을 건네곤 했습니다. 아기 예수의 이름은 프란치스코의 입안에서 꿀처럼 달고 향기로운 이름이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성탄에 관한 한 일화는 주님의 성탄이 “모든 이를 위한 날”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 어느 해 성탄일이 금요일과 겹쳐 단식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아기 예수께서 태어나신 이날을 단식일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죄악입니다. 이 날은 담벼락까지도 고기를 먹여야 하는 날입니다. 비록 먹일 수는 없으니, 그 겉에다가 고기를 문지르기라도 해야 합니다.”
주님의 성탄날에 프란치스코는 부자들이 가난한 이들과 굶주린 이들의 배를 든든히 채워 주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또 소나 당나귀 같은 가축들에게도 평소보다 더 넉넉하게 여물을 주라고 권고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성탄을 맞이하며 품은 진실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황제께 한 번만이라도 말할 수 있다면 이렇게 청하겠소. ‘오늘 같은 날에는 모든 사람이 밀과 곡식을 길거리에 뿌리게 하셔서 새들도 성대한 이 날을 실컷 누리게 해 주십시오. 특히 나의 자매들인 종달새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그는 바로 이 날, 가난한 동정녀께서 겪으셨을 궁핍함이 얼마나 컸을지를 생각하며 자주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느 날 점심 식사 중, 한 형제가 복되신 동정녀의 가난과 그 아들 그리스도의 빈곤에 대해 이야기하자, 프란치스코는 곧 식탁에서 일어나 맨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그리고 한숨과 눈물로 범벅이 된 채 나머지 빵을 먹었습니다. 그만큼 그는 주님의 성탄 신비를 온 존재로 느끼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가난은 구원에 이르는 특별한 길”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길이 맺는 영적 열매는 참으로 많지만, 그 참된 가치를 아는 이가 너무도 적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이토록 생생하게 성탄의 신비를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복음을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통하여’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조금도 한눈팔지 않고, 온 열정을 다해, 애타는 갈망으로, 온전한 정신과 뜨겁게 타오르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를 따랐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처럼 우리도 주님의 성탄을 단지 아름다운 이야기나 연례행사로 지나치지 않고, 가난하신 아기 예수의 사랑을 삶으로 더 깊이 체험하고 이어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아기 예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또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을 위해 태어나셨음을 기억하며,
성탄의 기쁨과 가난, 나눔과 자비의 정신을 마음속에 새기고 살아가도록 성 프란치스코의 전구를 함께 청합시다.
<금주간 성서읽기> 묵시 7-14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와 목동 / 세 바르따스>
제 6장 오직 하느님만을
통고의 마리아
고바의 성지와 수도원의 수방
‘통고의 마리아’ 수녀의 주위 사람들은 이제 그녀의 신분을 다 알게 되었다. 그러나 장상의 뜻을 따라 특히 본인의 부탁으로 그녀 앞에서는 되도록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도록 극구 조심하였다.
드물기는 하나 허가를 받고 그녀를 방문하여 과거 사정을 묻거나 현재의 파티마 공경의 상황을 전해 주기는 하였다. 그런데 그녀는 알려 주기 전에 이미 파티마의 사정을 남김 없이 알고 있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것을 알았습니까?" 하고 어느 날 루치아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일어난 그 후의 상황을 이야기한 안테로 드 훼게일이 놀라서 물었다. 이번에는 루치아 편에서 당황하여 얼굴을 붉히면서 입안에서 우물쭈물,
“아닙니다. 오직 상상해 본 것입니다.” 하고 피하려 했다.
생각컨대 이 상상은 하늘에 있는 친구 히야친따와 프란치스코로부터 직접 받은 소식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 혹은 발현의 진상과 직접 관계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떻든 루치아는 그 방문객에게 이어 말했다.
“매월, 발현의 13일은 파티마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합니다. 저는 밤 새우는 성무, 즉 야간 조배 시간을 성당에서 보낼 허가가 없기에 제 영혼은 파티마로 달려갑니다. 그리하여 현시된 성체 대전에 무릎 꿇은 수천의 신자들 속에 섞여 져도 부복합니다. 그곳에서 저는 모든 이를 위해 졸음이 올 때까지 기도하고 난 다음, 회칙대로 육신도 쉬어야 하기에 침상에 들어갑니다. 새벽녘 미사 시간이 되면 눈을 감은 채 역시 파티마의 미사에 참여합니다. 수천 명의 신자들과 함께 노천에서 영성체를 합니다. 수녀들과 공동 로사리오 기도를 드릴 때 저는 다른 또 한 무리의 기도드리는 형제 자매들, 즉 고바 다 이리아를 덮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지요.
순례단 속에 있을 때도 저는 오직 혼자서 제일 처음 발현을 회상하면서 어린 프란치스코와 히야친따와 함께 기도하는, 온전히 어린이 그대로의 자신을 봅니다(2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