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 이사야서는 주님의 영이 그 위에 머무시어
성령으로 세상을 정의롭고 평화롭게 하시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예언합니다.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그는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
오늘 복음은 이사야서가 예언한 메시아가 오셨는데 예수께서 바로 그분이시라는
뜻으로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라고 얘기하면서
아울러 그것을 보는 눈이 얼마나 행복한지도 얘기합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언젠가 저는 우울하다는 것은 무신론적이라고,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 그 안에 아니 계신다는 표시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오늘 독서와 복음의 빛을 받아 바꿔 얘기하면
그 안에 성령께서 머무시어 성령 충만한 사람은 우울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끔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 정신질환자를 우울 마귀 든 사람이라고 잘못 진단하곤
악령을 쫓아내는 행위를 하다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잘못을 저지르곤 합니다.
그들과 같은 뜻도 아니고 같은 행위를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저도 우울감이 우리를 지배하려고 하면 그것을 심리학적으로도 봐야 하지만
신앙적인 관점에서 우울 마귀 짓이라고 경계하며 쫓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이 우리 안 계시면 우울 마귀가 우리 안에서 준동한다는 뜻인데
여기서 우울 마귀는 꼭 악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우울케 하는 모든 악한 세력과 기운을 말하는 것이며,
우리 안에 성령을 모셔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감히 말하건대 신앙적인 관점이란 성령으로 보는 것입니다.
성령의 눈으로 고통 가운데서도 즐거움과 기쁨을 꿰뚫어 볼 줄 알고,
성령의 눈으로 우울한 현실 가운데서도 희망을 내다볼 줄 아는 것입니다.
고통도 꿰뚫으면 그 안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우울해도 내다보면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성령 안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