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5,1–3.11ㄴ–32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오자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수군댑니다.
“저 사람은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함께 음식을 먹는군.”
예수님은 그들에게 비유로 대답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되찾은 아들(탕자의 비유)’을 들려주십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받아 떠나
모든 것을 탕진하고,
굶주림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멀리 왔는지 깨닫습니다.
“아버지께 돌아가겠다.”
그가 돌아올 때,
아버지는 멀리서 보고 달려가 끌어안고 입을 맞춥니다.
회개를 끝까지 보고 나서가 아니라,
돌아오는 움직임 자체를 은총으로 받아들이며 먼저 품습니다.
성 암브로시오는
이 비유에서 아버지의 행동을
하느님의 자비로 읽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계산된 판결이 아니라
잃어버린 이를 되찾는 기쁨이며,
돌아오는 이를 벌주기보다
살아 있게 하시는 사랑의 권능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맏아들의 분노는
“정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랑이 식어버린 마음의 경직을 드러냅니다.
암브로시오의 시선은 우리를 향해 묻습니다.
나는 죄인이 돌아올 때 기뻐하는가, 아니면 화가 나는가?
나는 사람을 ‘자격’으로 판단하는가, 아니면 ‘회복’으로 바라보는가?
돌봄 주간의 토요일,
주님은 공동체에게 한 가지를 가르치십니다.
돌봄은 정답을 말하는 일이 아니라, 돌아올 길을 열어주는 일이라고.
그리고 그 길의 시작은
상대가 완벽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이 먼저 달려오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제가 맏아들의 마음으로
타인을 재단하지 않게 하소서.
돌아오는 이에게 먼저 달려가신 아버지처럼
저도 자비의 걸음을 배우게 하소서.
상처 난 관계가
당신의 기쁨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