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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칸 신학의 펠라기우스주의, 얀센주의, 완전주의에 대한 입장 1.

 

영성 생활을 말씀에 굴복하는 데서 시작하지 않고 자기 노력의 결과로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신학에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육화와 수난의 사랑을 심각하게 왜곡하여 은총과 자비에 대한 의존이 아니라 내가 이루어 낸 영적 성취에 쏠리게 합니다. 그것이 교회가 공적으로 규정한 현재 진행형의 이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교회 역사와 신학 안에서 프란치스칸의 현실을 명확히 함으로써 오늘의 교회 안에서 분명한 영성적 진로를 모색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칸 신학은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창조 세계의 본질적인 선함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독특한 영적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이 신학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으며 모든 피조물이 내재적인 존엄성과 선함을 지닌다고 믿는다. 특히 프란치스칸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의 겸손과 수난의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러한 세계관을 통해 하느님이 물질세계 안에 현존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실재의 중심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은 죄의 사실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 자체가 구원의 핵심이라는 독특한 시각을 제시한다. 프란치스칸 영성은 단순성, 연민, 그리고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에 대한 봉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고 본받는 것을 중요시하며, 지적 탐구와 영적 헌신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독교 역사에서 인간의 자유의지, 원죄, 하느님의 은총, 그리고 구원과 성화의 본질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이 중 펠라기우스주의, 얀센주의, 완전주의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들에 접근하며 첨예한 신학적 대립을 야기했다. 펠라기우스주의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자력 구원 가능성을 강조하며 원죄의 유전적 영향을 부정하는 반면 , 얀센주의는 아우구스티누스주의를 극단적으로 해석하여 유효 은총과 제한 속죄를 주장하며 인간 의지의 무력함과 엄격한 도덕주의를 강조한다. 한편, 완전주의는 주로 웨슬리안 전통에서 발전한 개념으로, 성화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의도적인 죄를 짓지 않는 완전한 삶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I. 펠라기우스주의와 프란치스칸 신학

펠라기우스주의의 주요 교리

펠라기우스주의는 5세기 초 브리튼 출신 수도승 펠라기우스에 의해 주창된 신학적 입장으로, 인간의 자유의지와 도덕적 책임성을 극도로 강조한다. 펠라기우스는 아담의 죄가 그의 후손들에게 전가되지 않았으며 , 인간은 타락 이전의 아담과 하와와 같이 죄 없는 상태로 태어난다고 주장했다. 이는 원죄의 보편적 영향을 부정하는 핵심적인 주장이다. 그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선과 악을 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기에 ,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 없이도 선한 행위를 할 수 있으며 자기 노력에 의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펠라기우스는 하느님의 계명이 인간에게 행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라고 역설했다. 펠라기우스주의에서 은총은 주로 하느님의 말씀의 훈육이나 외적인 도움 정도로 이해되었으며 , 구원에 필수적인 초자연적 개입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또한, 죄는 인간 내면의 본성적 부패가 아닌, 개별적인 행위 안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주의와의 대립 및 교회의 단죄

펠라기우스주의는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와 원죄론, 자유의지론, 은총론, 구원론 등 여러 면에서 첨예하게 대립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담의 원죄가 모든 인류에게 전가되었으며, 타락 이후 인간의 자유의지는 죄에 속박되어 스스로 선을 행할 자유를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선한 행위와 구원을 위해서는 하느님의 은총이 필수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결국 펠라기우스주의는 418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고, 교황 조시모에 의해 파문되었다. 이는 하느님의 은총의 절대적 필요성을 부인하고 인간의 자율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이 기독교의 근본 교리와 배치된다는 교회의 입장을 확립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후 반펠라기우스주의는 인간이 은총을 수용하거나 저항할 자유를 가졌다고 주장하여 펠라기우스주의와 아우구스티누스주의 사이의 절충을 시도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칸 신학의 입장 : 인간 본성의 존엄성과 은총의 필수성

프란치스칸 신학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기에 본질적으로 선하며 존엄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인간 본성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은 펠라기우스가 인간 본성의 존엄성을 훼손시키는 마니교의 숙명론에 반대하며 인간의 책임과 자유를 역설한 동기와 일면 유사한 지점을 가진다. 그러나 프란치스칸 신학은 펠라기우스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구원과 은총의 문제를 다룬다.

 

프란치스칸 신학은 원죄와 속죄에 강한 강조를 두지 않으며, 대신 창조의 기쁨과 하느님의 사랑의 현현으로서의 창조 세계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인간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창조와 세상이 근본적으로 선한 하느님의 선물로 남아있다고 보는 관점 때문이다. 프란치스칸 신학은 펠라기우스주의와 달리 구원과 성화를 위해 하느님의 은총이 필수적임을 명확히 인정한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펠라기우스주의를 "자기 노력에 의한 정당화, 인간 의지와 능력 숭배"로 비판하며, 이는 진정한 사랑이 결여된 자기중심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자기만족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한다. 진정한 성화는 자기 부인과 하느님과 타인에 대한 사랑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으로만 가능하다고 본다.

 

프란치스칸 신학은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협력이 복합적인 관계를 이룬다고 이해한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존재하지만, 타락으로 인해 선을 행하는 데 제한적이며, 하느님의 은총이 먼저 역사하여 인간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의지를 움직여 죄에서 벗어날 힘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노력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펠라기우스주의의 "자력 구원"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프란치스칸 신학은 인간 본성의 선함과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펠라기우스주의의 시각과 달리,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어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긍정적인 인간관을 유지하면서도, 구원과 성화에 있어서 하느님 은총의 절대적 필요성을 인정함으로써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한다. 인간은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죄로 인해 온전히 선을 행할 수 없게 되었고, 따라서 하느님의 은총이 필수적이라는 가톨릭 주류 교리 와 궤를 같이 한다. 프란치스칸 신학은 이를 '창조의 선함''육화의 은총'이라는 긍정적 틀 안에서 해석하여, 인간의 결함보다는 하느님의 사랑과 회복력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프란치스칸 신학이 원죄에 강한 강조를 두지 않는다는 점 은 펠라기우스주의의 원죄 부정과 표면적으로 유사해 보일 수 있으나, 그 근본 동기는 다르다.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자율성과 능력에 대한 확신에서 원죄를 부정했지만, 프란치스칸 신학은 하느님의 창조가 본질적으로 선하며, 하느님의 사랑이 죄보다 더 근원적이라는 관점에서 원죄의 '절대적' 파괴력에 대한 강조를 덜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상태에 대한 비관적 시각보다는 하느님의 자비와 회복 능력에 대한 낙관적 신뢰를 반영한다.

 

펠라기우스주의는 구원이 인간의 '노력''선한 행위'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펠라기우스적 사고방식을 "자기 노력에 의한 정당화, 인간 의지와 능력 숭배"로 규정하며, 이를 "자기중심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자기만족"으로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은 프란치스칸 영성의 핵심인 가난과 겸손, 자기 부인, 그리고 타인과 창조물에 대한 사랑 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성화의 길은 개인의 성취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자신을 비우고 도구적 존재로 타인에게 나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펠라기우스주의의 자기 노력 강조는 개인의 영적 교만과 타인에 대한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만약 구원이 전적으로 개인의 노력에 달려 있다면, 구원받지 못한 자나 영적으로 부족한 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생겨날 수 있으며, 이는 프란치스칸이 강조하는 연민과 포용 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하느님의 무상성과 보편성에서 흘러나오는 선이 인간의 모든 관계의 동력이라는 사실을 왜곡시킬 위험이 너무나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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