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질문은 우리 존재의 근원에 대한 가장 깊은 질문입니다. 누구든지 존재의 뿌리를 잃어버리면 현재의 나를 인식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역사 안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하느님 안에 뿌리를 둔 정체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들
가톨릭 신자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우리는 원죄를 씻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으며,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됩니다. 이 순간부터 우리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양자(養子)의 자격을 얻게 됩니다. 이 관계는 그 무엇으로도 깨뜨릴 수 없는 영원한 정체성의 기반이 됩니다. 성경은 우리가 혈통이나 인간의 뜻이 아닌, 오직 하느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요한 1:12-13). 이는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창세 1:27),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세속적인 기준이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는 이미 하느님께 사랑받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태어난 새로운 피조물
하느님은 우리가 더 이상 죄와 세속에 얽매여 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길 원하십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전 것은 사라지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2고린 5:17) 이 말씀은 도구적 존재로 다시 태어난 우리가 죄에 묶여 있지 않고, 하느님 안에 뿌리를 둔 정체성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뜻합니다.
구원받은 존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써 죄의 용서를 받아 구원받은 존재입니다. 세속적 가치를 떠나 거룩하게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또한 하느님 나라를 상속받을 거룩한 존재들입니다. 이 땅에 살지만, 본향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목적을 가진 존재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분명한 목적을 두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에 포함된 존재들입니다. (1베드로 2:9)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도록(마태 5:13-16)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단순히 나는 누구인가? 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삶의 목적과도 연결됩니다. 결국,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은 인과응보의 가치체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느님 안에서만 온전히 찾을 수 있습니다.
2.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
가톨릭 신자는 혼자서 신앙생활을 하는 개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 공동체의 지체입니다.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모시며 그분과 하나가 되고, 동시에 모든 교우들과 영적으로 연결됩니다. 우리는 보편적인 교회의 일원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성인들과 더불어 하느님을 찬미하는 공동체에 속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영함으로써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모든 지체들과 일치하게 되는 성사에 참여하게 됩니다.
3. 하느님의 소명을 받은 존재
하느님은 각 신자에게 특별한 소명(召命)을 주셨습니다. 이 소명은 수도 생활, 사제직, 혼인성사를 통한 가정생활, 혹은 독신 생활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이 소명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세상을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도구로 봉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은 하느님의 뜻을 찾아 실천하는 순례의 여정이며, 이 안에서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과 목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길에서 길을 만나 길이 되어가는 존재들입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나의 정체성은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양자가 되고, 성체성사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가 되며, 하느님의 소명에 따라 이 세상에서 그분의 자비와 선을 증거하는 삶을 사는 것에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교회의 성사와 교리를 통해 온전하게 형성되고 유지됩니다.
프란치스칸 수도자로서의 정체성
나는 프란치스칸 수도자로서 단순히 수도회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넘어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과 삶의 방식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이는 하느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세상과 자연, 그리고 가난한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독특한 정체성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한 삶을 따름
프란치스칸 수도자의 가장 핵심적인 정체성은 그리스도의 가난과 온유하고 겸손 하신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모든 것을 버리고 철저한 가난 속에서 살았던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재산이 없는 것을 넘어,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하는 내적 가난을 의미합니다. 소유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세상의 부와 명예가 아닌 복음의 가치를 추구합니다. 말씀에 굴복하고 복음을 삶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 살아갑니다. 프란치스칸 영성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과의 형제애를 강조합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자연 안에서 모든 피조물을 '형제' 또는 '자매'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모든 창조물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함께 존재한다는 깊은 깨달음에서 비롯됩니다. 프란치스칸 수도자들은 자연 안에서 피조물과 형제성을 유지하고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며,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 속에서 겸손하게 살아갑니다. 이들은 환경 보호와 생태계 보존을 중요한 사명으로 여깁니다.
결론적으로 프란치스칸 수도자로서의 정체성은 그리스도의 가난을 따르고, 모든 피조물과 형제애를 나누며, 평화와 선의 도구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과의 깊은 관계를 바탕으로 세상 속에서 복음을 발생시키며 가난과 겸손을 통해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발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