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서 태어난 순례자의 노래 (골로사이 3장을 읽고)
나를 채웠던 단단한 '나'를
가난한 누이에게 기쁘게 내어주니
비로소 내 안에 깃들 하느님의 자리가 생겨납니다.
저 높은 곳에 있는 것을 찾으라 하신 말씀,
태양의 빛살에서 나를 찾고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속삭임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탐욕의 제단은 무너지고
그 자리엔 작은 들꽃 한 송이 피어나
하느님의 지문을 겸손히 제게 보여줍니다.
거짓의 두꺼운 옷은 한 겹씩 벗어 던지고
가시나무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로운 바람처럼
상처 입은 모든 것들을 부드럽게 감싸안습니다.
사랑은 완전하게 묶는 끈이라 하셨으니,
한 자리에 머물러 자리를 지키는 나무와도
한 뿌리에 연결된 숨결이 됩니다.
주님의 말씀에 굴복하니
주님의 노래를 부르는 작은 악기,
창조 세계와 더불어 노래하는 가장 작은 목소리.
하느님 안에 숨겨진 나의 새 생명은
가장 작은 피조물의 눈 속에서 빛나는 한 방울의 이슬입니다.
내려가고 낮아져야 가장 깊은 하늘을 담을 수 있음을.
나를 비워낸 바로 그 자리에 고이는 눈물
슬프도록 아름다운 저녁노을의 고요한 아름다움
그것은 아버지의 품이었습니다.
내 눈은 이름 없는 들풀의 푸른 혈관 속에 흐르는 햇살을 보고,
거미줄 끝에 매달린 아침 이슬의 우주를 봅니다.
나의 숨은 저 멀리 숲속 떡갈나무의 날숨이 되고
나의 기도가 이름 모를 작은 풀벌레의 노래에 섞입니다.
내 손끝은 거친 나무껍질의 깊은 주름을 어루만지며
내 발바닥은 차가운 흙의 맨살에 닿아
만물을 품어 기르시는 어머니의 따스한 체온을 느낍니다.
탐욕의 우상은 발밑의 흙 한 줌보다 가벼워지고
거짓의 갑옷은 한 올 한 올 풀어져
숨 쉬는 모든 순간이 거룩한 기도가 됩니다.
뻐꾸기에게 내 어깨를 빌려주고
말없이 버티는 바위에게 나의 어깨를 기댑니다.
사랑만이 완전하게 묶는 끈이라는 것을 믿기에
상처 입은 발바닥의 아픔마저 끌어안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로 꿰매어진
거룩한 조각보, 하나의 숨결입니다.
말씀은 더 이상 활자로 갇힌 지식이 아니라
새벽을 여는 장엄한 태양의 찬가로,
목마른 땅을 적시는 비의 다정한 위로로,
내 온몸에 풍성히 머무릅니다.
가장 낮은 곳에 엎드려
가장 작은 자의 발을 씻길 때,
가장 높은 하늘과 입 맞추는
눈물겨운 기쁨을 배웁니다.
하느님 안에 감추어진 나의 새 생명은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압니다.
주님, 이 보잘것없는 몸을 당신의 악기로 쓰시어
사랑이 필요한 곳에 침묵의 노래가 되게 하소서.
목마른 뿌리에게 전하는 새벽이슬이 되게 하시고
지친 날개를 쉬어가는 나뭇가지가 되게 하소서.
모든 창조물과 더불어 당신을 찬미하는
흙의 심장을 가진 작은 순례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