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에서 쓴 묵상 글 1
1. 마지막 저녁식사
내어주는 몸과 쏟는 피의 성사
구원의 역사를 몸으로 쓰시는 분
내려놓는 힘의 무게
내어 맡기는 자유의 무게
무릎을 꿇고 발을 씻는 마음
피와 땀으로 얼룩진 얼굴
무상성과 보편성의 열매
겟세마니의 기도
골고타의 십자가
열린 옆구리
피와 물의 성사
온유함과 겸손의 실재
말 없는 진리
용서의 확산
선의 확산
생명의 확산
미리보는 부활
2025, 4, 17. 성목요일
2. 수필로 써보는 신비 (무언가 그 너머의 이야기)
새벽녘은 늘 고요하다. 창밖의 도시가 아직 잠든 동안, 빛은 천천히, 마치 망설이는 듯 천지간의 경계를 더듬으며 다가온다. 이 순간, 나는 바람에 실린 작은 숨소리조차 신비롭게 느껴진다. 시간은 멈춘 듯하면서도, 멈추지 않은 채 흐르고 있다. 어쩌면 이 모든 고요는 그 너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신비를 풀어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신비란 풀어질 수 없는 질문이며, 질문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마치 삶 속에 늘 숨어 있는 수수께끼처럼 우리는 그것을 만나고 그것을 느끼면서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신비란 고요한 순간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일상의 단조로움 속에서 빛을 발한다. 그것은 우리를 나아가게 하고, 눈을 뜨게 하며, 무언가 중요한 것을 깨닫게 해준다.
나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살피며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상상해 보았다.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이 작은 자연의 움직임이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저 바람이 지나가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미처 이해하지 못한 어떤 숨겨진 대화일까? 우리는 때때로 이 자연의 신비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지만 그 무력감 속에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힘이 있다.
일상의 삶으로 눈을 돌렸다. 관계, 사랑, 용서와 같은 인간의 감정은 또 하나의 깊은 신비다. 사랑은 왜 우리가 있는 그대로를 넘어 더 나은 사람이 되게끔 만드는가? 용서는 왜 스스로를 치유하며 상대방에게 평화의 선물을 줄 수 있는가?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신비는 살아 숨 쉬며, 때로는 슬픔과 환희로 우리를 압도한다.
이 모든 것들이 복음의 실천과 닿아 있음을 느낀다. 복음은 신비 자체를 품고 있다. 그것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행동으로 나타나고, 사람들 사이에 퍼지며, 세상의 희망을 밝혀준다. 그리고 그 행동이야말로 신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 신비를 수필로 쓰는 이유는, 우리가 그 신비를 더 잘 느끼고, 그 너머의 의미를 살피기 위해서다.
신비는 우리 곁에 있다. 느껴지지 않을 때조차도. 그것은 우리의 일상에 흩뿌려져 있으며, 깊은 생각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것을 찾고 싶은 마음 자체가 이미 그 신비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2025, 4,17 성목요일 새벽
서울의 하늘 아래
잠 못 이루는 어느 병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