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성녀 데레사(아빌라의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루카 11,47-54
어제에 이어 예수님의 ‘불행 선언’이 이어집니다.
오늘 가장 아픈 말씀은 마지막 것입니다.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다.”
‘지식의 열쇠’란 하느님을 알고 만나게 하는 열쇠입니다.
율법 교사들은 성경을 손에 쥐고 있었으면서도,
그것을 사람들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문’으로 열어 주지 않고
도리어 복잡한 규정으로 문을 막아 버렸습니다.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남도 못 들어가게 한 것입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가 사목자들에게 늘 일깨웠듯,
말씀을 맡은 이는 문지기가 아니라 ‘문을 여는 사람’입니다.
바로 여기서 오늘 기리는 성녀 데레사가 환히 빛납니다.
아빌라의 데레사는 열쇠를 치우기는커녕,
잠긴 문을 활짝 열어 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스무 해 가까이 메마른 기도와 씨름했습니다.
기도 시간에 모래시계만 쳐다보던 시절도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다 마흔 즈음, 상처 입으신 예수님의 상본 앞에서
깊은 회심을 겪고 관상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리고 자신이 걸어간 그 길을 아낌없이 글로 남겼습니다.
〈영혼의 성〉에서 그는 우리 영혼을 ‘수정으로 된 성(城)’에 비깁니다.
그 성의 가장 깊은 방에 임금이신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성으로 들어가는 ‘문’이 바로 ‘기도’라고 말합니다.
성경의 어려운 규정이 아니라, 누구나 열 수 있는 문 말입니다.
그녀는 기도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과 단둘이 나누는 우정 어린 대화.’
얼마나 다정한 열쇠입니까?
배우지 못한 이도, 죄인도, 지친 이도 열 수 있는 문입니다.
데레사는 그 문을 열어 두고 우리를 부릅니다.
물론 그도 오해와 모함을 겪었습니다.
수도회를 개혁하려다 온갖 반대에 부딪혔고,
‘여자가 무슨 신학이냐’는 시대의 벽에 갇혔습니다.
오늘 복음의 율법 학자들처럼, 앙심을 품고 몰아대는 이들이 있었지요.
그러나 그녀는 흔들리지 않고 노래했습니다.
“아무것도 너를 흔들지 못하게 하라.
아무것도 너를 두렵게 하지 못하게 하라.
모든 것은 지나가지만 하느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하느님만으로 넉넉하도다.”
2티모 1장도 말합니다 ―
하느님께서는 ‘비겁함의 영’이 아니라 힘과 사랑의 영을 주셨습니다.
친절·선행 주간의 눈으로 보면
데레사는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줍니다.
그녀는 깊은 신비 체험을 하고서도
기도의 참된 열매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가 참되었는지는 무릎 꿇은 시간만이 아니라
‘사랑의 행위’로 드러난다.”
그러니 관상과 친절은 두 개가 아닙니다.
깊이 기도한 사람은 반드시 이웃에게 부드러워집니다.
그리고 자기가 만난 그 사랑을 아낌없이 나누어 줍니다 ―
문을 열어 주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선행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남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문을 막고 있지 않은가?
나는 내가 받은 은총과 길을 이웃에게 열어 주는가?
나는 내 영혼의 성 안으로 들어가 그분과 대화하는가?
나의 기도는 ‘사랑의 행위’로 드러나고 있는가?
주님,
남이 당신께 나아가는 문을 막지 않게 하소서.
제 영혼의 성 안에서 당신과 우정을 나누게 하시고,
그 기도가 이웃을 향한 사랑의 행위로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