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8,28-34
주님께서는 일부러 호수를 건너
이방인의 땅, 무덤가에 버려진 두 사람에게 가십니다.
아무도 다가갈 수 없을 만큼 사나웠던 그들을
주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가장 멀리 밀려난 이를 찾아가시는 것 ―
그것이 주님의 길입니다.
성 대 그레고리오는
이 장면에서 두 가지 아이러니를 봅니다.
첫째, 마귀들은 그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아봅니다.
악령조차 그분의 권능 앞에 떱니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둘째, 마귀에게서 풀려난 사람보다
돼지 떼를 잃은 손해가 더 크게 느껴진 고을 사람들은
구원자께 “떠나 주십시오” 하고 청합니다.
그레고리오는 여기서
재물을 그리스도보다 앞세우는 마음의 위험을 경고합니다.
한 사람의 회복보다 돼지 떼를 더 아까워하는 그 마음이,
바로 우리 안에도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들이 “때가 되기도 전에”라고 말한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악의 세력은
자기 시간이 끝나가고 있음을, 그분 앞에서 무력함을 압니다.
그레고리오는 위로합니다.
아무리 사나운 어둠도
주님의 한마디 “가라” 앞에서는 물러갈 수밖에 없다고.
우리를 묶고 있는 어떤 사슬도
그분의 권능보다 강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 일치의 관점에서 보면
이 복음은 두 가지 반응을 나란히 보여 줍니다.
자기 것을 지키려 그리스도를 ‘떠나보내는’ 고을 사람들과,
그분을 만나 자유로워진 사람.
일치는 그분을 모셔 들이는 데서 시작되고,
분열은 그분을 밀어내는 데서 시작됩니다.
사랑·기쁨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깊은 기쁨은
가장 버림받았던 이가 회복되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돼지 떼에 마음을 빼앗긴 이들은
그 기쁨에 동참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무엇을 더 소중히 여기느냐가
기쁨과 두려움을 갈라놓습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가장 멀리 밀려난 이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돼지 떼’(내 것)를 그리스도보다 아까워하지는 않는가?
나는 주님께 “떠나 주십시오”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그분을 기꺼이 모셔 들이고 있는가?
주님,
가장 버림받은 이를 찾아가시는 당신을 닮게 하소서.
제 것을 지키려 당신을 밀어내지 않게 하시고,
어떤 사슬도 당신 권능보다 강하지 않음을 믿으며
당신을 제 안에 기꺼이 모셔 들이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