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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Aug
2026년 8월 16일 일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마태 15,21-28 이 가나안 부인을 우리는 지난번에 ‘담을 넘는 믿음’으로 만났습니다. 오늘 주님의 날에는 그 부인의 ‘인내’에 눈을 멈추어 봅니다. 그는 한 번이 아니라 ‘네 번’의 벽을 만납니다. 첫째, 주님의 ‘침묵’입니다. “한마디...
Date2026.08.15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0 Views61
어제 광복절을 지내며 우리는 오늘의 이 광복을 누리며
지난날 우리의 불행했던 때를 돌아볼 수 있는 나라가 되었음을 생각하다가
그러나 아직 불행이 현재진행인 나라의 사람들이 있음을 문득 생각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광복만 챙기고 다른 민족과 나라들의 불행에 무관심한
저와 우리나라를 돌아보게 되었고 저의 사랑과 복음 선포에
어떤 경계가 있음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경계란 저의 사랑과 복음 선포에 나라와 민족이라는 경계,
나라와 민족이라는 경계는 아니지만 내 사랑과 복음 선포는
요 정도까지만이라는 경계가 있다는 자각과 반성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경계를 짓는 데는 제힘의 한계가 큰 이유인데
주님께서는 한계가 없으신 분인데도 나라와 민족의 경계를 지으신 걸까요?
그리고 예수님이 이사야서가 오시리라고 예언한 메시아라고 우리는 믿는데
오늘 첫째 독서 이사야서가 말하는 메시아와 복음의 주님은 다른 분일까요?
“나는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며 주님의 종이 되려고 주님을 따르는
이방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고 기도하는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리라.
그들의 번제물과 희생 제물들은 나의 제단 위에서 기꺼이 받아들여지리니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
그러므로 오늘 주님의 언행이 주님의 진심일까 생각게 됩니다.
사실 루카복음에는 오늘 얘기가 완전히 빠져 있고,
마르코복음에서는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라고 얘기합니다.
그렇습니다.
마태오복음의 주님도 이방인들에게 당신 사랑과
복음 선포의 경계를 지으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뽑힌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 사랑과 복음을 전하시고
그들이 당신의 사도로서 당신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게 하심입니다.
실제로 마태오복음 맨 마지막에 주님께서는 사도들을 이렇게 파견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사실 주님은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모은 것밖에 하지 못하셨습니다.
주님은 삼 년을 공생활 하시다가 돌아가셨고,
이스라엘 밖을 나가신 적이 거의 없고 대부분 갈릴래아 지방에서 활동하셨습니다.
마태오복음 18장까지 갈릴래아에서 제자들을 말씀과 행적으로 길러내시고
사도들을 뽑아 세우시고 그들에게 당신 교회와 선교를 맡기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오늘 가나안 여인에게 하신 행위도 이스라엘 백성과 제자들이 보라고 하신 겁니다.
너희들이 강아지라고 여기는 이방 여인의 믿음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게 하기 위해
주님께서는 이방 여인에게 부러 모욕적인 언사를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자주 말씀하신, 꼴찌가 첫째 되는 구원론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첫째로 먼저 구원하고자 하시는 이스라엘은 교만하여 예수님을 몰라보고
구원을 걷어차는 데 비해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만나게 되는 것 말입니다.
그것이 잘 드러나는 것이 여인의 표현 곧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데
여인은 말끝마다 ‘주님’이라고 예수님을 부릅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이런 여인에게 주님께서 대단히 큰 칭찬을 하십니다.
사실 믿음에 대한 주님의 큰 칭찬은 다 이방인인 백인대장과 여인에게 하셨습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려는 우리 신앙인들은 제자들처럼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라고 말하지 말고
저처럼 사랑과 복음 선포의 경계를 짓지 말 것입니다.
나의 힘의 한계 때문에 사랑의 경계를 짓지 말고,
민족적 편견 때문에 구원의 경계를 짓지 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