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0,1-12
오늘 교회는 선교의 수호자인 성녀를 기리며
일흔두 제자를 보내시는 복음을 읽습니다.
그런데 이 조합이 처음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복음은 길을 떠나는 이야기인데
오늘의 성녀는 수녀원 담장 밖으로 나간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숫자를 눈여겨볼 만합니다.
‘일흔두 명’은 창세기 10장의 민족 목록을 떠올리게 합니다.
곧 온 세상의 민족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수입니다.
열두 제자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향한다면,
일흔두 제자는 온 인류를 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둘씩’ 보내집니다.
혼자 가지 않습니다. 증언은 언제나 함께하는 일입니다.
다음으로 주님께서 지니지 말라 하신 목록이 놀랍습니다.
돈주머니, 여행 보따리, 신발.
먼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세 가지입니다.
곧 선교는 준비를 갖추어 떠나는 일이 아니라
맨몸으로 맡겨지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는 말씀도
무례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시대의 길 인사는 오래 걸리는 예식이었습니다.
곁길로 새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첫마디가 정해져 있습니다.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히브리 인사 ‘샬롬’입니다.
선교사가 건네는 첫 물건이 교리도, 요구도 아니라 평화입니다.
여기서 오늘의 성녀와 만나게 됩니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는 열다섯에 수녀원에 들어가
스물넷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생애는 좁았습니다.
같은 복도, 같은 성당, 같은 얼굴들.
그런데 그는 자서전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교회라는 몸 안에서 자기가 될 자리를 찾다가
마침내 깨달았다고.
교회의 심장 안에서 자기는 사랑이 되겠다고.
심장은 몸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심장이 멈추면 손도 발도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가 선교의 수호자가 된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1927년 비오 11세 교황께서 그녀를
사도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나란히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하셨습니다.
한 사람은 바다를 건너 아시아의 문 앞에서 죽었고,
한 사람은 담장 안에서 죽었습니다.
교회는 두 사람을 같은 자리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한마디가 오늘 복음과 이어집니다.
그는 큰 일을 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일을 큰 사랑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복도에서 마주친 수녀에게 미소 짓는 일,
자기를 싫어하는 이 곁에 일부러 앉는 일,
빨래터에서 튀는 물을 말없이 견디는 일.
이것이 그의 선교였습니다.
영성 주간의 눈으로 보면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고요와 단순함은 세상에서 물러나는 일이 아닙니다.
손에 쥔 것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맡겨진 것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빈손이 되어야 평화를 건넬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갖추어지면 시작하겠다고 미루고 있지 않은가?
내가 내려놓아야 할 돈주머니와 보따리는 무엇인가?
나는 만나는 이에게 무엇을 먼저 건네는가?
내가 있는 이 자리가 나의 선교지임을 아는가?
주님,
갖추어지기를 기다리다 미루지 않게 하소서.
빈손으로 길을 나서게 하시고,
제가 선 자리에서 먼저 평화를 건네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