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마태 15,21-28
이 가나안 부인을 우리는 지난번에
‘담을 넘는 믿음’으로 만났습니다.
오늘 주님의 날에는
그 부인의 ‘인내’에 눈을 멈추어 봅니다.
그는 한 번이 아니라 ‘네 번’의 벽을 만납니다.
첫째, 주님의 ‘침묵’입니다.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둘째, 제자들의 ‘내침’입니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셋째, ‘이스라엘 집안의 양들’이라는 선 긋기입니다.
넷째, ‘강아지’라는 모욕에 가까운 말씀입니다.
이 네 번의 벽 앞에서
보통 사람이라면 등을 돌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인은
좌절하지도, 발끈하지도, 떠나지도 않습니다.
침묵에도 다시 청하고,
내침에도 다가가 엎드리며,
모욕에 가까운 말마저
“그러나 강아지들도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는
‘믿음의 한마디’로 받아넘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인내란 그저 ‘참는 것’이 아니라,
거절마저 ‘믿음의 지렛대’로 바꾸는 힘입니다.
성 예로니모는
이 부인에게서 ‘지치지 않는 기도’를 봅니다.
주님께서 침묵하실 때조차
그 침묵을 ‘거절’이 아니라 ‘더 깊이 청하라는 초대’로 알아듣는 것.
주님께서는 ‘늘 기도하며 낙심하지 말라’ 하셨습니다(루카 18,1).
이 부인은 바로 그 ‘낙심하지 않는 기도’의 모범입니다.
그리고 그 인내는 마침내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라는 탄복으로 보답받습니다.
평화·인내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복음은 ‘인내’가 ‘평화’로 이어짐을 보여 줍니다.
제1독서의 이사야 예언대로,
하느님께서는 이방인들마저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시어
‘만민을 위한 기도의 집’에서 기쁘게 하십니다.
끝까지 견딘 이 부인의 인내가,
‘담 밖의 사람’을 ‘식탁의 사람’으로 바꾸는
평화의 문을 연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주님의 ‘침묵’ 앞에서 쉽게 등을 돌리지 않는가?
나는 거절을 ‘낙심’이 아니라 ‘더 깊은 청함’으로 바꾸는가?
나는 응답이 더뎌도 ‘낙심하지 않는 기도’를 이어 가는가?
나의 인내는 ‘만민의 평화’를 향해 열려 있는가?
주님,
당신의 침묵 앞에서도 등을 돌리지 않게 하소서.
거절을 더 깊은 청함으로 바꾸는 인내를 주시고,
그 인내가 만민의 평화로 이어지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