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20,19–31
제자들은 문을 걸어 잠근 채 두려움 속에 모여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시어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주님은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주시고,
용서의 사명을 맡기십니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우리는 주님을 보았다” 말해도
토마스는 믿지 못합니다.
“내가 직접 보지 않으면 믿지 않겠다.”
여드레 뒤, 주님께서는 토마스에게도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라.”
토마스는 고백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성 예로니모는
신앙이 단순한 감정이나 소문이 아니라
말씀의 증언 위에 서는 용기임을 가르치도록 이끕니다.
믿음은 억지로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스스로 다가오시는 자비의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예로니모에게 성서는
바로 그 만남을 오늘 여기로 데려오는 길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서를 “읽는 것”을 넘어
성서 안에 머물러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삶으로 초대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의 ‘닫힌 문’은
두려움의 표지이지만,
주님은 그 문을 부수지 않고
그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부활의 평화는
강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 있는 이들에게 먼저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2주 친절/선행 주간에 이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 친절은 닫힌 마음의 문을 부수는 힘이 아니라,
그 문 안으로 들어오는 평화의 방식입니다.
• 선행은 ‘대단한 업적’이 아니라,
두려움의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작은 용서와 배려입니다.
• 성체를 모시는 우리는
토마스처럼 흔들리는 이들을
판단하기보다,
주님이 하신 것처럼 기다려 주고 다시 초대하는 공동체로 부름 받습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 말씀은
보지 못하는 이들을 꾸짖는 말이 아니라
말씀과 공동체의 증언 안에서
평화를 선택하는 이들을 축복하는 말씀입니다.
주님,
두려움으로 닫힌 제 마음 안에도 들어오시는
당신의 평화를 믿게 하소서.
친절로 상처를 덧내지 않게 하시고,
선행으로 누군가의 문 앞에서
오래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성체를 모신 오늘,
제가 부활의 평화를 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