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제는 부활의 공동체라고 함이 좋을 것입니다.
오늘 독서 사도행전은 초대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소개합니다.
“형제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형제적 친교의 공동체,
기도와 성찬의 공동체,
포기와 나눔의 공동체입니다.
이것은 부활의 기쁨이랄까 충만함이 가져다준 선물입니다.
기쁨이 충만할 때 우리는 그 기쁨을 나누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기쁨을 나누게 되는데 맨입에 나눌 수 없으니
먹을 것을 나누고 가진 것을 나누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손주 봤다고 한턱내고,
딸 결혼했다고 한턱내는 것이 좋은 예지요.
반대로 슬픈 사람은 슬픔을 같이 나눠주길 바랄 뿐 결코 한턱낼 수 없고요.
그런데 인간적인 기쁨과 충만도 이러한데 부활의 기쁨과 충만은 어떠하겠습니까?
훨씬 더 기쁘고 훨씬 더 충만하기에 더 완전하고 더 대단하고 더 오래 가겠지요?!
부활의 기쁨과 충만은 그야말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기쁨이고
성령으로 하느님을 만나게 된 기쁨이니 그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임사체험(臨死體驗)이라는 것이 있지요.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난 체험 말입니다.
과학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지만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체험을 하는데 대부분 빛과 황홀을 체험한다고 하고,
그것이 너무도 황홀하기에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된다고 하지요.
꼭 이런 임사체험이 아니더라도 치유가 불가능하다고 의사마저 포기한
사람이 기도로 살게 된 경우 하느님 체험을 하면서 인생이 달라지지요.
자기는 원래 죽은 목숨이었는데 하느님께서 덤으로 주신 인생이니
이제 더는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살기로 하고
재산도 좋은 일을 위해 쓰라고 다 희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을 통해 더 높은 가치를 체험한 결과 전에 가치 있던 것들이 무가치하게 되고,
욕심부리고 집착하던 이 세상 것들을 사랑을 위해 곧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위해 내놓게 되는 겁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경지를 오늘 독서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어,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고 또한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상속 재산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상속 재산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썩지도 더러워지지도 시들지도 않는 하늘의 상속 재산을 소유한 사람은
이 세상 상속 재산을 육신의 아버지께 다 돌려주고
어디에도 또 무엇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주님을 섬긴 프란치스코처럼
한편으로는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님을 자유롭게 따르게 될 것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