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오늘 주님께서는 박해받을 때 인내로서 생명을 얻으라고 말씀하시는데
인내를 생각하다 보니 두 가지로 묵상이 되었습니다.
두 가지란 인내심과 인내력으로서 이것을 가지고 이해하면
인내가 무엇인지 더 잘 이해가 되겠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인내로서 생명을 얻으려면 먼저 인내심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내심(忍耐心)이란 말 그대로 인내하려는 마음가짐입니다.
우리말의 마음가짐이란 말이 참 좋은 말로 다가옵니다.
마음가짐이란 마음을 가지는 것이고 그래서 마음이 없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 인내하려는 마음가짐이 없이 인내하면
다시 말해서 인내하려는 마음이 없이 억지로 인내하면
인내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어쩌면 인내도 아니고,
그런 인내로는 생명을 얻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을 얻으려는 목적의식이 먼저 있어야 하고,
그럴 때 생명을 얻기 위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인내심을 갖게 되어
마침내 생명을 얻게 되고 더 나아가 영원한 생명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이론적으로는 이렇게만 하면 되는데
실제로는 인내하려는 능동적인 마음가짐이 되어 있어도
인내라는 것이 본래 고통을 인내하는 것이기에 그 마음이 꺾이기가 쉽지요.
그렇기에 인내심에 더하여 견디는 힘 곧 인내력도 있어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고통을 감수할 뿐 아니라 감당할 힘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감수(甘受)한다는 말이 달게 받아들인다는 말인데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은 생명을 목적으로 달게 받아들이지만
그 고통이 큰데다 오래가면 인내력은 바닥나고 한계에 부닥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관건은 이 인내력을 어떻게 지니고 자라게 하느냐 그것인데
하나는 기도를 통해 힘주시는 하느님께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내하면서 인내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 반성을 해야겠습니다.
우리는 인내력을 주십사고 기도한 적이 있는지.
기도와 함께 인내하면서 인내력을 키우려고 노력했는지.
사실 우리는 남을 위해 기도하면서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드물고,
재물을 달라고는 혹 기도해도 힘을 달라는 기도는 거의 하지 않으며
힘을 달라고는 혹 기도해도 인내력을 달라는 기도는 더 하지 않지요.
그만큼 인내는 싫어하기도 하고 쉽지 않다는 표시이니
그럴수록 우리의 기도 의지와 실천 의지가 필요하고,
그럴 때야 주님께서도 맞갖은 은총을 주실 것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