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예수님을 주님, 저의 주님이라고 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것도 30대 중반까지는 잘하지 못하였음,
임금님, 저의 임금님이라고 하는 것은 아직도 얼마간 거부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꼭 그리스도를 왕이라고 해야 하고,
그 축일을 지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여전히 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하면 역설적으로 그러기에 이 축일을 지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말 잘 듣는 아이에게 말 잘 들으라고 강조할 필요가 없듯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잘 받드는 사람에게 예수는 우리 임금이라고 할 필요 없고
그 의미를 잘 모르는 저 같은 자가 이 축일을 지내며 의미를 새겨야 하겠지요.
저의 거부감은 예수님께서 결코 임금이고자 하지 않으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사실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의 임금들과 같은 임금이 결코 되고 싶지 않은 분이셨습니다.
예루살렘 입성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호산나 다윗의 후손이라고 열광하며,
오늘 독서에서 보듯이 그 옛날 사람들이 다윗에게 기름 부어 임금으로 세운 것처럼
지금 로마 밑에 있는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어 나라를 구해주기를 바라고,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자신이나 구해 보라고 로마 군사들이 조롱할 때도
거기에 맞대응할 마음이 전혀 없으셨지요.
예수님께서 세우려고 하신 것은 당신의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였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세상에서도 이루어지는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시려고 오셨고 당신과 함께 그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언하셨지요.
어쨌거나 우리가 이 축일을 지내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 통치자가 아니라
온 누리의 통치자 곧 하늘과 땅의 통치자로 받들라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는 물론 세상의 통치자들도 이 예수님의 통치를 본받으라는 것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예수님의 통치는 어떤 것입니까?
그것이 오늘 감사송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몸소 십자가 제대 위에서 티 없는 평화의 제물로 당신을 봉헌하시어
인류를 구원하시고, 그 영원하고 보편된 나라를 아버지께 바치셨나이다.
그 나라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이며,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이옵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도 그리스도의 이 왕직에 참여하라고 합니다.
우리도 우리 가정이나 공동체에서 억압하고 군림하는 자가 되지 말고,
주님처럼 밑으로 내려가 발을 씻어줌으로써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에 오게 하고,
그럼으로써 세상에 생명과 사랑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왕직을 수행하라고 합니다.
이 초대를 받아 기꺼이 응답하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