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읽은 마카베오서는 어제 위대한 노인에 이어
위대한 어머니의 신앙심에 관해 들려주는데
저는 이 어머니를 창세기적인 여인이라고 명명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어떻게 내 배 속에 생기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준 것은 내가 아니며,
너희 몸의 각 부분을 제자리에 붙여 준 것도 내가 아니다.”
그녀에게 일곱 아들은 하나도 그녀의 아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섯 아들은 하느님의 아들이어도 막내아들만은 내 아들로
남겨두지 않고 막내마저 하느님께 바치며 이렇게 얘기한 것입니다.
창세기적 여인과 창세기적 믿음은 존재의 시작을 이렇게 믿고,
이렇게 소유 없이 가난하며 이렇게 종말론적 희망을 지닙니다.
내가 태어난 것은 생물학적으로는 부모에게서 생겨났어도
하느님께서 부모를 빌려 나를 나게 하셨다고 믿는 것이요,
내가 자녀들을 생산한 것이 틀림없어도 나는 나의 몸을
그분 창조의 도구로 내어드린 것밖에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존재적으로 그리고 근원적으로 가난할 때
부모와 자식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날 수 있고,
모든 애착에서도 근원적으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 마카베오서의 창세기적 여인의 위대함은 종말관에서도 나타납니다.
오늘 마카베오서는 창세기적 여인의 입을 빌려
종말론적인 희망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생겨날 때 그를 빚어내시고 만물이 생겨날 때
그것을 마련해 내신 온 세상의 창조주께서,
자비로이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다시 주실 것이다.”
창조하시는 분이 구원도 하시는 겁니다.
사랑 없이 불장난으로 애를 생산한 인간은 낳기만 하고 버리기도 하지만
완전하고 영원한 사랑의 하느님은 당신이 낳은 생명을 내버려 두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시고 끝내 구원하실 거라고 우리 신앙은 창세기 여인처럼 믿습니다.
우리 미사 감사송은 하느님께 감사드리는데
감사의 두 굵직한 이유가 바로 창조와 구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아버지께서는 인간을 선으로 창조하시고
정의로 책벌하셨으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비로 구원하셨나이다.”
“아버지께서는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하여
인류를 창조하셨듯이
또한 인자로이 인류를 구원하셨나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동안 감사드릴 것이 많고도 많겠지만
나의 창조와 나의 구원에 대해 굵직히 감사드릴 것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창세기적인 믿음이 있어야만 이럴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창세기적인 여인에게서 도전도 받고 자극도 받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