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질문을 쏟아냅니다.
예수님의 대답에서 실수를 이끌어 내
그 잘못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불행을 말씀하신 것은
그들에게 저주를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불행하게 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미움이나 증오에서 나왔다기보다는
걱정과 사랑에서 나왔습니다.
걱정과 사랑이 아니라면
굳이 힘들게, 그것도 강한 반대를 받아가면서
그들의 잘못을 이야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간혹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남의 잘못을 지적하기도 하는데
예수님의 태도는 그렇게 강압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자신들의 모습, 자신들의 잘못을 알아보고
그 길에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을 사랑으로 보지 못하면
그것은 단순히 공격으로 보일 뿐입니다.
나의 약점을 드러내서
나에게 망신을 주고 모욕을 주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종종 상대방에게
똑같이 망신을 주고 모욕을 주는 것으로
되갚아주려고 합니다.
그것을 위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실수를 찾아내려 노력합니다.
사랑을 사랑으로 보지 못하는 것만큼
불행한 것은 없습니다.
내 방식대로의 사랑만 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자기 생각과 다른 방식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 방식만 강요하면서
다른 방식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그래도 부족한 사랑에 더 목마르게 됩니다.
물론 당장 나를 좋게 말하고 나를 잘 대해주는 것은
달콤합니다.
이런 것만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달콤함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달콤함은 때로 내 눈을 가려
내 모습을 볼 수 없게 만듭니다.
오히려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달콤함으로 상대의 눈을 가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도 합니다.
나의 성장을 위한 사랑의 말은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습니다.
나의 성장을 위해 나 자신을 보게하는 것들은
때로는 아프게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그 말에서 사랑을 볼 수 있다면
나를 성장시켜 주기 위한 마음을 볼 수 있다면
천천히 그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