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서로 다른 두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당신을 따르겠다는 율법 학자에게는
따라오라고 흔쾌히 대답하지 않으시지만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을 청하는 제자에게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즉시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누구에게는 허락되고
누구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첫 번째 경우에 복음은 그를 율법 학자라고 소개합니다.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삶이 평탄하지 않음을
그래서 당신을 따르는 삶도 그러하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율법 학자로서의 명성이나 권위와는 먼 삶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표현하시면서
그런데도 선택할 수 있는지 물으시는 것으로 들립니다.
두 번째 경우에 복음은 그를 제자라고 소개합니다.
이미 그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선택했는데
계속해서 가족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걱정한다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온전히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시작은 아버지의 장사이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내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맞는지
끊임없이 고민할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단호함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 땅 위에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를 살아간다는 것은
아직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과정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삶은 안정과는 거리가 먼 삶입니다.
그러다보니 이 삶을 선택하고나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게 됩니다.
명성이나 권위까지는 아니더라도
불안정을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로 가는 그 길이
나 혼자만의 길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걷는 여정이라는 점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하느님과 함께 걸을 때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이미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함에 초점을 둘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