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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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마태 5,22)
분노를 버려라
이 말씀은 주님께서 형제들 사이의 사랑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하느님께 예물을 바치려는 이가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그와 화해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는 그의 예물을 받지 않으신다고 단호히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카인이 바친 예물을 하느님께서 받지 않으셨다는 것을 압니다. 카인은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복음서 여러 곳에서 형제 간의 사랑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3,34)
이렇게 말씀하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또 주님께서는 이렇게도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 13,35)
주님께서 즈카르야 예언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신 것도 당연합니다.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하여라. 형제에게 친절하고 자비를 베풀어라.” (즈카 8,16–17 참조)
또한 주님께서는 시편에서 다윗을 통해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노여움을 그치고 성을 가라앉혀라.” (시편 37,8)
-아퀼레이아의 크로마티우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20
버림과 그대로 둠은 어떻게 열매를 맺는가
여행 중에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르셨는데 마르타라는 여자가 집으로 모셔 들였다(루카 10,38).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말씀드리고 있는 이 “성(城)”은 영혼 안에 있는 성으로서, 대단히 단순하고 단일합니다. 이 성은 모든 방법을 뛰어넘을 만큼 고귀하기에, 내가 앞서 말한 고귀한 능력조차 이 성내를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게다가, 내가 앞서 언급한 또 다른 능력—곧 하느님이 그 안에서 자신의 온갖 부유함과 자신의 온갖 환희를 동원하여 끊임없이 타오르시는 그 능력도—이 성내를 들여다본 적이 없습니다. 이 성은 그토록 단순하고 단일합니다.
이 유일한 방법 또는 능력은 어떠한 능력이나 방법도 들여다볼 수 없을 만큼 고귀합니다. 심지어 하느님조차도 그것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이 살아 계신 것만큼이나 진실한 것이기에, 하느님조차도 그것을 엿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의 인간적인 ‘속성’ 안에 머무르시는 한, 그분은 그것을 결코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이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단일한 방법과 능력은 길 없는 길이자, 어떠한 속성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그것을 들여다보시려면, 자신의 모든 신적인 이름과 자신의 인간적인 속성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조차도 이 모든 것을 내던지지 않으면 그것을 들여다보실 수 없습니다. 모든 방법과 속성을 여의고 **단순한 하나(a simple One)**가 되실 때, 그분은 더 이상 아버지도, 아들도, 성령도 아니게 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무엇이십니다.(406)


<금주간 성서읽기> 마르 10-13장
<생태 아낌 주간> 물.전기.자동차.구매와 소비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와 목동 / 세 바르따스>
제 6장 오직 하느님만을
오롯한 희생-번제-
출발은 1921년 6월 17일로 결정되었다. 포르투갈의 유명한 한 작가는 마음을 취하게 할 만큼 감격적인 필치로 풍부한 시정을 발휘하여 루치아가 파티마의 모든 것과 나눈 “작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에게는 조심할 필요가 있었기에 살짝 몰래 빠져 나오지 않으면 안되었다.
어떤 비밀스런 소리가--고바의 귀부인의 소리가 아니겠는가--루치아에게 속삭였다. 그녀가 태어나고 성장해 온 이곳, 특히 성모님께서 그녀에게 발현하신 산을 영원히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아! 이 산이야말로 성모님께서 그녀에게 미소해 주셨고 세상의 것이 아닌 목소리로 말
씀해 주신 산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 옛날처럼 귓전을 스치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그리운 산이거늘!
출발 전날 소녀는 혼자서 들을 가로질러 보리밭 사이 호랑가시나무와 감람수 사이에 드문드문 자리잡은 돌 위에 섰다. 저 동산, 이 언덕 하나 하나를 넘으며 그녀는 넘치는 빛에 가득 찬 주위의 풍경, 그리고 다시는 볼 수 없는 지평선을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있었다.
루치아는 이야기한다.
‘냐는 가엾은 아버지의 땅을 가로질러 갔다. 그리고 여기서 잠깐 저기서 잠깐 주저앉았다. 그리고 가만히 땅을 어루만졌다. 나는 혼자서 마음으로 생각했다. 아! 이젠 내 평생 다시는 여기 오지 못할 것이다."
한 무리의 양떼가 목에 단 방울을 울리면서 지나간다. 지난날 자신이 지키던 양들, 그리고 지금은 떼어놓고 가야 하는 귀여운 양들을 생각했다.(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