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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
요한 12,24–26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이어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하십니다.
이 말씀은
복음의 가장 깊은 역설을 보여 줍니다.
살기 위해 붙드는 길이 아니라
내어 줌으로 생명이 열리는 길,
자기보존이 아니라 사랑의 자기증여를 통해
열매가 맺히는 길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말씀을 그리스도 자신에게서 먼저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밀알이십니다.
당신 자신을 땅에 떨어뜨리시고
죽음까지 받아들이심으로
많은 이에게 생명의 열매를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단지 일반적인 윤리 교훈이 아니라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를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이 가지 않은 길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당신이 먼저 걸으신 길을 따라오라 부르십니다.

아우구스티노의 시선으로 보면
“죽는다”는 것은 단지 육체적 죽음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중심성의 죽음,
교만의 죽음,
내 뜻만 옳다고 여기는 완고함의 죽음이기도 합니다.
밀알이 한 알 그대로 남는다는 것은
겉으로는 온전해 보일지 몰라도
실은 닫혀 있고 열매 맺지 못하는 삶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느님께 자신을 내어 맡기고
사랑을 위해 자신을 비울 때
삶은 비로소 열리고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을 잃고
이 세상에서 제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그것을 간직할 것이다”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목숨을 미워한다는 것은
생명을 업신여긴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생명을 우상처럼 붙들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우구스티노는
참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서 자기 생명을 바르게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보았습니다.
곧 지금의 편안함만 붙드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향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사람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하십니다.
이는 신앙이 단지 주님을 존경하는 데서 끝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주님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건너는 길,
열매를 위해 자신을 내어 놓는 길,
숨은 자리에서 사랑하는 길입니다.

아우구스티노는
주님과 함께 있고 싶다면
주님의 마음을 함께 살아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제자의 길은
높은 자리를 얻는 길이 아니라
주님이 계신 자리, 곧 사랑의 자기증여의 자리로 가는 길입니다.

영성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복음은
영성이 왜 비움과 죽음의 언어를 품는지를 알려 줍니다.
영성은 나를 더 대단하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내 안의 불필요한 자기집착을 죽이고
하느님의 생명이 자라게 하는 길입니다.
밀알은 자기 껍질을 지키는 동안에는 안전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만 하고,
손해 보지 않으려고만 하고,
내 자아를 지키는 데만 모든 힘을 쓰면
결국 한 알로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자신을 내어 놓을 때
삶은 더 넓어지고
열매는 나를 넘어 다른 이에게까지 이어집니다.

성 베다를 기억하는 오늘,
이 말씀은 역사 안의 신앙과도 깊이 이어집니다.
역사에 남는 믿음은
자기 이름을 남기려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자신을 바친 삶입니다.
밀알처럼 땅에 묻힌 이들의 기도와 희생,
숨은 충실함이
교회와 공동체의 역사를 살려 왔습니다.
그래서 참된 역사는
겉으로 크게 드러난 사람들만이 아니라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 놓은 이들의 열매로 이어집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한 알 그대로 남으려 하는가,
아니면 주님 안에서 열매 맺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지키느라
더 깊은 생명을 놓치고 있는가?
나는 주님을 따르고 싶다고 하면서도
정작 밀알의 길은 피하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 안에 떨어져라.
그러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주님,
한 알 그대로 남으려는 제 마음을 비추어 주소서.
저를 닫아 두는 자기중심성과 두려움을 벗게 하시고
당신 안에서 사랑을 위해 자신을 내어 놓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작은 희생과 숨은 충실함 안에서도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며
당신이 계신 자리로 저를 이끌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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