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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
루카 6,39-42
형제의 눈 속 ‘티’ ― 본디 그리스 말로는 ‘작은 잔가지’입니다.
그런데 내 눈 속에는 ‘들보’ ― 커다란 기둥이 박혀 있습니다.
기둥이 박힌 눈으로 남의 잔가지를 빼내겠다니,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늘 이렇게 삽니다.
남의 작은 허물은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면서,
내 큰 허물에는 눈을 감습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형제의 티를 못 본 척하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내 주라’ ― 곧 돌보라 하십니다.
다만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네 들보를 빼내라, 그래야 티도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다’ 하십니다.
내가 먼저 맑아져야, 형제를 ‘사랑으로, 조심스럽게’ 돌볼 수 있습니다.
단죄가 아니라 치유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내 눈의 들보’란 무엇일까요?
한 사목자는 이렇게 풀이합니다.
‘형제를 바라보는 내 마음에 사랑이 없는 것’,
바로 그것이 들보라고 말입니다.
내 판단이 옳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 없이 바라보면,
그 옳음은 형제를 돌보기는커녕 찌르는 ‘무기’가 됩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 없듯,
나 자신이 먼저 돌봄받아 맑아지지 않으면
남을 바르게 돌볼 수 없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들보 빼내기’를
한평생의 과업으로 삼은 사람입니다.
그의 〈고백록〉은 남을 심판하는 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하느님 앞에 낱낱이 비추어 돌본 책입니다.
그는 먼저 자기 눈의 들보를 정직하게 빼냈고,
그렇게 눈이 맑아진 뒤에야
비로소 남을 ‘단죄자’가 아니라
‘자비로운 치유자’로 돌볼 수 있었습니다.

돌봄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복음은 ‘돌봄에도 겸손이 필요하다’ 일러 줍니다.
‘저 사람 때문이야’라며 상대의 티만 세는 눈으로는
아무도 참되게 돌볼 수 없습니다.
돌봄은 ‘내 몫(들보)을 먼저 정직하게 돌보고,
맑아진 눈으로 형제를 사랑으로 어루만지는’ 데서 시작됩니다.
갈라티아서의 바오로도,
한때 교회를 박해하던 ‘가장 큰 들보’의 사람이었으나
은총으로 그 들보가 빠지고 사도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남의 ‘티’는 크게 보면서 내 ‘들보’는 외면하지 않는가?
내가 형제를 바라보고 돌보는 눈에 ‘사랑’이 있는가?
나는 남을 돌보기 전에 ‘나 자신’부터 정직히 돌보는가?
나는 남을 ‘단죄’하려는가, ‘사랑으로 돌보려’ 하는가?

주님,
남의 티를 세기 전에 먼저 제 눈의 들보를 빼내게 하소서.
사랑 없이 바라보던 그 눈을 맑게 하시고,
단죄가 아니라 자비로 형제를 돌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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