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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기도 6 보게 되는 사람에서 기도가 된 사람으로

 

가난은 결국 보게 하는 힘입니다. 내 욕망의 안개가 걷히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 곁에서 말없이 지쳐 가는 형제의 얼굴이 보이고, 인정받지 못한 채 공동체를 지탱해 온 이의 수고가 보이며, 내 판단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의 침묵이 보입니다.

 

길가의 작은 꽃과 한 방울의 물과 늙은 나무와 창가에 내려앉은 새에게도 하느님의 선성이 스며 있음을 보게 됩니다. 가난은 보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분의 상처 안에서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보고, 실패한 나 자신 안에서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시는 자비를 보며, 나와 다른 사람 안에서 내가 갖지 못한 하느님의 선물을 봅니다. 약한 이에게서 하느님의 힘을 보고, 가난한 이에게서 복음의 진실을 배우며,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서 나를 사랑으로 부르시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봅니다.

 

마침내 가난은 내가 보이는 존재가 되는 데서 다른 이를 바라보는 존재가 되는 길입니다. 나를 알아 달라는 갈망에서 벗어나 다른 이의 존재를 알아보는 사람이 되고, 나의 선함을 증명하려는 데서 벗어나 다른 이 안에 이미 주어진 선함을 기뻐하는 사람이 됩니다. 기도는 나를 하느님께 보이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내 눈을 씻는 은총이 됩니다. 가난과 기도는 서로 떨어질 수 없습니다. 가난하지 않은 기도는 자기 욕망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꾸미는 일이 되기 쉽고, 기도하지 않는 가난은 분노와 자기 의로움 속에 메마를 수 있습니다.

 

기도는 가난을 사랑으로 변화시키고, 가난은 기도가 환상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삶으로 내려오게 합니다. 하느님과 일치한 사람은 세상에서 멀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이 끌어안는 사람입니다.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만난 사람은 상처받은 이들의 울음을 외면할 수 없고, 가난한 이들의 삶을 개인의 불운으로만 바라볼 수 없으며, 고통받는 피조물의 신음을 듣지 못한 척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떼어 놓지 않고 세상의 가장 아픈 자리로 데려갑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오래 바라본 사람은 길가에 쓰러진 사람을 지나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상처에서 그리스도의 상처를 보고, 버려진 이의 눈빛에서 자신을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눈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바라봄의 기도는 마침내 행동이 됩니다. 침묵 속에서 바라본 사랑이 손과 발을 움직여 굶주린 이에게 밥을 건네고, 외로운 이를 찾아가며, 용서받지 못한 사람의 곁에 머물게 합니다.

 

하느님 사랑은 우리를 비우지만 공허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워진 자리에 더 큰 생명을 채웁니다. 내가 나의 왕국을 내려놓을 때 하느님의 나라가 들어오고, 내가 내 뜻만을 주장하지 않을 때 하느님의 뜻이 관계 안에서 흐르며, 내가 사람을 소유하려 하지 않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가장 큰 보물은 자신이 가진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을 보물로 여기는 사람은 사람들의 인정에 덜 매이게 됩니다. 자신을 포장하고 증명하고 자랑하고 비교하고 경쟁하던 일이 조금씩 사라집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있는 그대로 알고 사랑하신다는 믿음이 깊어질수록, 나는 다른 사람보다 나아 보이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이가 빛날 때 함께 기뻐할 수 있고, 내가 말째의 자리에 놓여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밀려나지 않았음을 압니다. 가난은 하느님께서 다시 태어나실 공간을 내 안에 만드는 일입니다. 내가 움켜쥔 것을 놓고, 나를 가득 채운 생각과 욕망과 두려움을 비우며,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고백할 때 하느님의 말씀이 내 삶 안에서 다시 육화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 기도 속에서만 태어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형제를 받아들이는 포옹 안에서, 상처 입은 이를 돌보는 손길 안에서,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흘리는 눈물 안에서 태어나십니다. 가난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분이 자기 안에서 살아가시도록 자리를 내어 드리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삶을 하느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을 위한 도구로 내어놓고, 자신을 통하여 사랑이 흘러가도록 허락하는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어느 날 기도는 더 이상 내가 드리는 말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됩니다. 내 침묵이 기도가 되고, 기다림이 기도가 되며, 형제의 말을 끝까지 듣는 일이 기도가 됩니다.

 

내 것을 내어주는 일이 기도가 되고, 약한 이를 위해 자리를 비우는 일이 기도가 되며, 피조물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일이 기도가 됩니다. 기도하던 사람이 마침내 기도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 가난은 상실이 아니라 탄생이 됩니다. 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참된 내가 태어나고, 내가 아무것도 갖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형제자매로 돌려받으며, 내 삶이 텅 비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생명으로 충만해집니다. 내가 내 힘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힘으로 살아가며, 나의 영광을 찾지 않고 하느님의 영광이 관계 안에서 드러나도록 허락합니다.

 

가난은 하느님 사랑을 얻기 위해 치르는 값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사랑을 받아들이는 빈손이며, 가난은 하느님께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아니라 우리에게 내려오시는 하느님을 맞이하는 열린 문이고, 가난은 삶의 아름다움을 빼앗는 어둠이 아니라 사물과 사람 안에 숨어 있는 하느님의 빛을 보게 하는 맑은 눈입니다.

 

나는 빈손으로 십자가 앞에 섭니다. 설명할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으며, 당신께 보여 드릴 공로도 없이 다만 나의 상처와 실패와 작은 갈망만을 들고 섭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나의 빈손을 꾸짖지 않으시고, 그 손 안에 당신의 못 박힌 손을 포개십니다. 내가 아무것도 내어놓지 못한다고 말할 때 당신께서는 이미 나 자신을 내어놓았다고 말씀하시고,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고백할 때 당신께서는 당신 자신을 나의 몫으로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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