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4,38-44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하루를 짧게 보여 줍니다.
그 하루에 세 가지 결이 담겨 있습니다.
‘치유’와 ‘기도’와 ‘파견’입니다.
먼저 ‘치유’입니다.
시몬의 장모는 열에서 나은 뒤
‘즉시 일어나 시중을 들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그 순서입니다.
나음이 곧바로 ‘섬김’으로 이어졌습니다.
성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가 일깨우듯,
은총으로 낫는다는 것은
‘나만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섬길 힘을 되찾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는 움켜쥐면 병들고,
흘려보내면(섬기면) 살아납니다.
다음은 ‘기도’입니다.
그 바쁜 치유의 하루를 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날이 밝자 외딴곳으로’ 나가셨습니다.
가장 분주한 사명의 한복판에서도,
그분은 홀로 아버지께 나아가 머무셨습니다.
이 ‘물러남의 기도’가 모든 활동의 샘이었습니다.
영적 성찰의 자리도 바로 이 ‘외딴곳’입니다.
거기서 그분은 ‘내가 무엇을 위해 파견되었는지’를
또렷이 아셨습니다.
마지막은 ‘파견’입니다.
군중은 예수님을 ‘붙들어’ 곁에 두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십니다.
“나는 ‘다른 고을들에도’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그 일을 하도록 내가 파견되었다.”
여기에 일치의 깊은 진실이 있습니다.
복음은 ‘한 고을’이 독점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우리 곁에만’ 붙들려는 마음이야말로
도리어 일치를 가로막습니다.
그분은 ‘모든 고을, 모든 민족’을 위한 분이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함께 나눌 때’ 하나가 됩니다.
영적 성찰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복음은 두 가지를 묻습니다.
‘나는 받은 은혜를 섬김으로 흘려보내는가?’
‘나는 그리스도와 은혜를 나만의 것으로 붙들려 하지 않는가?’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은혜를 받은 뒤 ‘섬김’으로 일어서는가?
나는 분주함 속에서도 ‘외딴곳의 기도’를 두는가?
나는 ‘내가 무엇을 위해 파견되었는지’ 아는가?
나는 그리스도를 ‘함께 나누는가’, ‘붙들려 하는가’?
주님,
낫게 하신 은혜를 섬김으로 흘려보내게 하소서.
분주함 속에서도 외딴곳의 기도를 잃지 않게 하시고,
당신을 ‘우리 것’으로 붙들지 않고 함께 나누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