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그들이란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입니다.
그들을 저로 바꾸면 김찬선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이에게 보이기 위한 거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아닐까요?
제가 바리사이하고는 다른가요? 조금이라도?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고,
곧 저의 모든 행위는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저는 위선뿐 아니라 독선의 잘못도 저지르는 자이지요.
좋게 이해하면 제가 그만큼 선을 좋아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악보다 선을 좋아하고,
악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며,
선 포기자 곧 선을 포기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선을 포기하고 막 살겠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들은 선이라는 것을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심지어 선을 증오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어제 복음에서 봤듯이 주인이 하느님 나라 잔치에
초대하려고 보낸 심부름꾼들을 죽이고 아들까지 죽이지요.
그러므로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하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하기보다는
가련한 사람 또는 불행한 사람이라고 함이 좋을 것입니다.
왜 가련하고 왜 불행합니까?
첫째는 그가 사람들의 평가에 연연하고 좌우되기 때문이고,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도 이런 사람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둘째는 그가 자기 진실과 직면하지 않고 거짓 자기로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고,
그럼으로써 회개할 기회를 놓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에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사람들 앞에 있음으로 하느님 앞에 있지 않게 되는 것이고,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하려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사는 사람의 문제를 봤지만
사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되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래서 일생을 이 문제와 씨름하였지만 아직도
오늘 주님께서 꾸짖으신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와 저는 다를 바가 없고,
그래서 오늘 복음만 읽으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지는 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