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7 추천 수 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비천함 속에 피어난 지고한 사랑

 

하늘이 스스로 낮아져 땅의 문지방을 넘던 날, 천사의 인사는 화려한 궁정의 휘장 사이가 아니라 이름 없이 가난한 한 처녀의 낮은 방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세상은 높고 강한 것들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반대의 길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레와 번개로 당신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침묵과 기다림과 수락의 떨림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프란치스코가 라 베르나의 외로운 기도처에서 흘렸던 불꽃 같은 눈물처럼, 우리도 오늘 다시 깨닫습니다. 우리가 찾는 하느님은 높은 곳의 찬란한 권능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가난하게 내려오신 분이라는 것을. 육화는 단지 하느님이 인간의 모습을 입으셨다는 교리적 선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이 스스로를 낮추는 방식이며, 무한하신 분이 유한한 존재의 숨결 안으로 들어오시는 지극히 놀랍고도 다정한 사건이었습니다. 전능이라는 옷을 벗고 연약함이라는 옷을 입으신 분, 영원하신 분이 시간 안으로 들어오시고, 충만하신 분이 결핍의 한복판을 당신의 자리로 삼으신 사건, 바로 그것이 육화입니다. 그러므로 구유는 단지 아기 예수의 자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택하신 존재 방식의 상징입니다.

 

높아짐이 아니라 낮아짐, 소유가 아니라 비움, 지배가 아니라 함께 있음, 그것이 하느님 사랑의 문법이었습니다. 마리아의 는 그래서 더욱 깊고 눈물겹습니다. 그 한마디는 단순한 순종의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 전체를 열어 하느님의 비천함을 받아들이는 환대였습니다. 자신의 계획을 앞세우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신비 앞에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일, 그것은 가장 큰 믿음이면서 가장 깊은 가난입니다. 마리아는 아무것도 붙들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를 비운 이의 태중에서 말씀이 살이 되었고, 그분의 낮아지심은 한 여인의 겸손한 동의 안에서 역사의 몸을 얻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사랑한 것은 바로 이 낮아지심의 신비였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멀리 계신 위엄의 왕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더기 같은 인간 조건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안으로 기꺼이 들어오신 가난한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탄을 생각할 때마다 울었고, 구유를 묵상할 때마다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그에게 육화는 교리 이전에 상처 입은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극진한 연민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 위에 군림하지 않으시고, 우리 곁으로, 우리 아래로, 우리의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오셨습니다. 그 낮아지심 안에서 프란치스코는 참된 힘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사랑은 결코 위에서 명령하지 않고, 아래로 내려와 함께 견디며 함께 살아내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말씀이 살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 인간의 몸이 더 이상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며, 세상의 작고 연약한 것들이 하느님의 현존을 품을 수 있는 거룩한 자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입으신 육신은 가난한 이의 마른 손과, 병든 이의 상처와, 버려진 이의 외로움과, 굶주린 이의 떨리는 배고픔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모든 자리에서 그분은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 보이십니다. 우리는 이제 보잘것없는 이의 얼굴을 외면하면서 육화의 신비를 말할 수 없습니다. 형제의 상처를 지나쳐 가면서 구유 앞에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육화는 과거의 기념이 아니라 오늘 다시 살아야 하는 복음의 방식입니다. 내 안에 있는 교만과 자기중심의 단단한 껍질을 깨뜨리고, 타인의 연약함을 판단하지 않고 끌어안으며, 내 자리를 조금 낮추어 누군가 숨 쉴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 바로 거기에서 육화는 다시 시작됩니다.

 

프란치스코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마음과 몸에 품고 형제자매를 사랑으로 돌볼 때, 우리 또한 그리스도를 낳는 어머니가 됩니다. 복음은 입술로만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살과 시간과 관계의 자리에서 다시 태어납니다. 내가 조금 더 온유해질 때, 조금 더 가난해질 때, 조금 더 기꺼이 자리를 내어줄 때, 하느님은 다시 세상 안으로 오십니다. 육화의 신비는 결국 하느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시는지 보여 주는 가장 부드럽고도 가장 강한 표지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비천함을 멀리서 동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우리의 추위를 바라만 보지 않으셨습니다. 친히 떨리는 몸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기 전에 먼저 눈물 흘릴 수 있는 눈을 가지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높아지려는 세상의 모든 욕망을 거슬러 하느님은 낮아짐으로 가장 높으신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높이 오르는 영성이 아니라 더 낮아지는 사랑입니다더 많이 소유하는 경건이 아니라 더 깊이 비워 내는 순명입니다내가 하느님을 위해 큰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하느님께서 내 작은 삶 안에 머무르실 수 있도록 조용히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입니다그 빈자리에서 사랑은 잉태되고겸손한 마음에서 복음은 다시 살이 되며가난한 관계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소리 없이 자라납니다.

 

, 지극히 높으시고 영광스러우신 하느님, 당신은 높음으로 빛나신 것이 아니라 낮아지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우리 마음의 어둠을 밝혀 주시고, 당신의 비천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이 우리를 위해 기꺼이 가난해지셨듯 우리도 우리 안의 교만한 높이를 내려놓고, 작은 이들과 함께 걷는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래서 우리의 하루가 또 하나의 구유가 되고, 우리의 마음이 또 하나의 마리아의 태중이 되며, 우리의 관계가 또 하나의 살아 있는 복음이 되어 온 세상 피조물과 더불어 조용하고 깊게 노래하게 하소서.

 

2026. 3. 25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에

병동에서의 묵상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비천함 속에 피어난 지고한 사랑 비천함 속에 피어난 지고한 사랑   하늘이 스스로 낮아져 땅의 문지방을 넘던 날, 천사의 인사는 화려한 궁정의 휘장 사이가 아니라 이름 없이 가난한 한 처녀의... new 이마르첼리노M 2026.03.25 7
1799 내면의 충만함 내면의 충만함   이미 우리 안에 있는 사랑으로의 회귀는 내면의 충만을 살기 위한 심오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자주 바깥을 향해 손을 뻗으며 살아갑니다. 더 많... 이마르첼리노M 2026.03.24 31
1798 불완전함과 실패 속에서 만나는 하느님 불완전함과 실패 속에서 만나는 하느님   신앙의 역설, 역설의 복음, 나는 불완전함과 실패 속에서 만나는 하느님을 뒤늦게 배웠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하느님께... 이마르첼리노M 2026.03.20 58
1797 작은자의 영성 작은자의 영성   작은 자의 길은 세상의 길과 반대로 흐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올라가라고 말하지만, 이 길은 내려가라고 초대합니다. 세상은 더 많이 가지라... 이마르첼리노M 2026.03.19 53
1796 거룩한 추락과 비움의 신비 거룩한 추락과 비움의 신비   우리는 상실을 두려워합니다.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이 줄어드는 일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들을 ... 이마르첼리노M 2026.03.18 42
1795 봄비 내리는 아침 봄비 내리는 아침 싱그러운 아침, 적당히 젖은 대지의 가슴이 연한 연두빛 숨결을 품었습니다. 그 품 안에서 하얀 매화꽃은 수줍은 첫사랑처럼 피어납니다. 연분... 이마르첼리노M 2026.03.18 37
1794 전쟁의 한 가운데서 비움으로 얻는 생명의 길 전쟁의 한 가운데서 비움으로 얻는 생명의 길   내적 가난의 신비속에서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이 되는 소식은 없을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미... 이마르첼리노M 2026.03.18 42
1793 성전에서 흘러 나오는 물과 베짜타 못의 물 성전에서 흘러 나오는 물과 베짜타 못의 물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는 두 가지 강렬한 물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전 문지방 아래에서 솟아나와 온 세상... 1 이마르첼리노M 2026.03.17 63
1792 내적 가난 안에 흐르는 포도주와 말씀에 굴복하는 잔치의 기쁨 내적 가난 안에 흐르는 포도주와 말씀에 굴복하는 잔치의 기쁨   갈릴래아 가나의 잔치가 한창일 때 사람들은 웃고 있었고 음악은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 1 이마르첼리노M 2026.03.16 41
1791 가나에서 있었던 두 개의 표징과 우리 믿음의 성찰 가나에서 있었던 두 개의 표징과 우리 믿음의 성찰 가나의 포도주에서 왕실 관리의 집까지 두 개의 표징을 통하여 우리 믿음의 현재를 바라보려 합니다. 요한 복... 1 이마르첼리노M 2026.03.16 47
1790 죄의 계산을 넘어 하느님 은총 안에서 경험하는 눈뜸 죄의 계산을 넘어 하느님 은총 안에서 경험하는 눈뜸   우리는 너무도 쉽게 고통의 이유를 묻습니다. 누군가 넘어졌을 때, 누군가 병들었을 때, 누군가 오래도록... 1 이마르첼리노M 2026.03.15 60
1789 가난하고 나약한 하느님 가난하고 나약한 하느님 1   무한을 향한 인간의 갈망과 좌절 우리는 모든 것이 스러져가는 유한한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육신은 쇠약해지며,... 1 이마르첼리노M 2026.03.14 49
1788 가난하고 나약한 하느님 2 가난하고 나약한 하느님 2 우리는 늘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오래 남는 것을 향해 손을 뻗으며 살아갑니다. 사라지지 않는 것, 무너지지 않는 것, 상처 입지 않... 이마르첼리노M 2026.03.14 53
1787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전부를 다해 사랑한다는 것은 단지 열심한 신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분열되지 않은 존재를 요청합니다. 생각은 하느... 이마르첼리노M 2026.03.13 47
1786 그분을 알아본 순간 그분을 알아본 순간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분을 알아본 순간부터 세상은 조금씩 다른 얼굴을 하기 시작했다. 같은 길을 걸어도 발밑의 흙은 전보다 부드러... 이마르첼리노M 2026.03.13 74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120 Next ›
/ 12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