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승천 대축일의 지내는 의미를 생각할 때
성모님께서 눈물의 골짜기인 세상을 떠나 영원한 기쁨과 행복의
하늘나라로 올라갔다는 것을 기념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며
그래서 이 정도론 성모 승천의 의미를 제대로 또 최고로 기념하는 게 아니겠지요.
저는 자주 저의 좌우명 중의 하나를 상기하며 저를 독려하는데
그것이 바로 ‘땅에서 하늘을 살자!’입니다.
이것은 세속적(육의)인 정신이 저를 지배하는 것을,
달리 얘기하면 현세의 행복에 만족하고 안주하려는
저급한 정신과 행복론을 경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도 아주 훌륭한 정신이고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추구해야 할 것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축일에 기려야 할 것은 인격적 차원입니다.
성모님처럼 길이신 주님과 일치하여 아버지 하느님께 가는 것 말입니다.
사실 성모님의 축일은 오늘 우리가 지내는 승천 축일 뿐 아니라
모든 축일이 다 아드님이신 주님과의 일치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성모 통고 축일과 오늘의 성모 승천 대축일이
어머니와 아들의 완전한 일치를 제일 잘 드러내는 축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드님의 수난과 죽음에 완전하게 일치하셨기에
성모님께 아드님의 승천에 참여하는 영광도 주어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완전한 일치는 주님을 따르는 것에 있어서도 완전하게 드러나고
이것이 오늘 이 축일을 지내며 우리가 기념하는 것이기도 하기에
오늘 미사의 감사송은 아름다운 찬미가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오늘 하늘에 오르신 분 하느님을 낳으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완성될 주님 교회의 시작이며 모상으로서 이 세상 나그넷길에 있는
주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안을 보증해 주셨나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너 나 없이 이 세상 나그넷길을 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이 아니어도 인생은 나그넷길이라고 하고
그래서 하숙생이라는 유행가도 이것을 노래합니다.
문제는 누구나 이 나그넷길을 가지만 나그넷길의 끝이 어디인지,
그것이 다르고 어떻게 또 누구와 그 길을 가느냐 그게 다릅니다.
다행히 우리 신앙인에게는 그 길의 목적지가 분명합니다.
지옥이나 연옥과 구분하여 천당이라고도 하고
하늘나라나 하느님 나라라고도 하는데 저는 더 선명하게
하느님이 바로 우리의 목적지라고 함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장소적인 목적지보다 인격적인 목적지가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기가 가려는 곳은 엄마가 있는 곳이 아니라 바로 엄마이지 않습니까?
우리도 하느님 계신 곳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께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께 갈 때도 인격적으로 갑니다.
고독하게 갈 때도 있지만 인격적으로 간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라서 아버지께 가는 것이지만,
그러기 위해서 주님께 우리를 인도해 줄,
성인들과 함께 주님을 따라서 아버지께 갑니다.
성인들 가운데 성인이 성모님이고
성모님은 가장 완벽한 모범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성모님과 함께 그리고 모든 성인과 함께
주님을 따라서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아버지께로 출발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