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9,16-22
오리게네스는
이 ‘한 가지 부족함’이 새로운 ‘규칙’이 아니라
‘집착으로부터의 자유’라고 봅니다.
청년에게 부족한 것은 ‘더 많은 선행’이 아니라,
‘손을 펴서 따라나서는 자유’였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일깨웁니다.
재물은 그 자체로 악이 아니지만,
‘붙들고 놓지 못할 때’ 우리를 도리어 ‘붙듭니다.’
가진 것이 ‘나의 것’이 아니라 ‘나를 가진 것’이 될 때,
영혼은 무거워져 따라나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청년은 ‘슬퍼하며’ 떠나갑니다.
주목할 것은, 그가 ‘화를 내며’가 아니라
‘슬퍼하며’ 떠났다는 점입니다.
그는 그 부르심이 ‘참되고 좋은 것’임을 알았습니다.
다만 ‘많은 재산’이 그의 발을 붙들었습니다.
집착은 이렇게,
좋은 줄 알면서도 따라가지 못하게 만드는
‘무거운 사슬’입니다.
평화·인내의 관점에서 보면
이 청년이 잃은 것은 ‘평화’였습니다.
그는 가진 것이 많았지만
‘슬퍼하며’ 떠났습니다.
참된 평화는 소유의 많음이 아니라
‘가볍게 따라나설 수 있는 자유’에서 옵니다.
그리고 그 자유는 단번에 오지 않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손을 펴는 ‘인내의 길’입니다.
거룩한 독서의 관점에서 보면
청년은 말씀을 ‘알았지만’ ‘따르지는’ 못했습니다.
말씀을 아는 것과 사는 것 사이에는
‘손을 펴는’ 결단이 있습니다.
렉시오 디비나는 바로 그 결단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움켜쥐고 놓지 못하는가?
나의 소유는 ‘나의 것’인가, 나를 ‘가진 것’인가?
나는 말씀을 ‘아는 것’에서 ‘따르는 것’으로 나아가는가?
나는 ‘슬퍼하며 떠나는’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주님,
움켜쥔 손을 펴서 가볍게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소유가 저를 ‘가지지’ 못하게 하시고,
말씀을 아는 것을 넘어 사는 자유를 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