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0,17-24
파견되었던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하니 마귀들까지 복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인정하시면서도, 기쁨의 자리를 바로잡으십니다.
“영들이 복종하는 것(성과·힘)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성공이 아니라 ‘하느님께 속해 있음’이 참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곧 ‘하느님의 심장에’ 새겨졌으니 말입니다.
그러고는 보기 드문 장면이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기뻐하며” 아버지를 찬미하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신비를, 당대의 석학이나 종교 권위자가 아니라
‘철부지들’ ―어부와 세리처럼 단순하고 작은 이들― 에게 여셨습니다.
성경은 교만한 자 앞에서는 침묵합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지식만으로는 하느님을 거머쥘 수 없고,
낮고 열린 마음에만 그분이 당신을 여십니다.
영성 주간의 눈으로 보면
이 말씀은 한 주간의 완벽한 매듭입니다.
영성 주간이 가르친 모든 것 ―
작아짐, 어린이 됨, 단순함, 낮아짐, 혼자가 아님― 이
여기 ‘철부지에게 드러내심’ 안에 모입니다.
영성은 똑똑한 이가 ‘이루어 내는 업적’이 아니라,
작고 열린 이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 선물을 받은 이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화요일 대천사 축일에 열린 그 눈으로, 이제 우리는
작은 것 안에서 하느님을 알아봅니다.
성 암브로시오가 새겼듯, 하느님의 깊은 것은
영리함으로 붙잡는 것이 아니라 겸손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받음의 기쁨은 성령께서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게 하시는 기쁨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성과와 힘’을 기뻐하는가, ‘하늘에 적힌 내 이름’을 기뻐하는가?
나는 똑똑함으로 하느님을 거머쥐려 하지 않는가?
나는 철부지처럼 낮고 열린 마음으로 그분을 받아들이는가?
나는 작은 것과 창조 안에서 하느님을 알아보는 ‘행복한 눈’을 지녔는가?
주님,
성과와 힘이 아니라 ‘하늘에 적힌 제 이름’을 기뻐하게 하소서.
똑똑함을 내려놓고 철부지처럼 낮게 하시어,
당신의 드러내심을 겸손히 받아 누리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