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청년이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르라는 것 때문에
예수님 추종에 실패하고 떠나가고,
예수님께서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자
베드로 사도는 의기양양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베드로 사도의 이 말에 저는 당신은 아내를 데리고 다니지 않았느냐고
바오로 사도가 1코린토 9장 5절에서 하듯 딴죽을 걸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저도 주님께서 버려야 할 것으로 말씀하신 집, 형제나 자매,
아버지와 어머니, 자녀와 토지를 버렸다고 강변할 생각도 없습니다.
제가 너무도 뻔뻔하다면 베드로 사도를 딴죽 걸고 저를 강변하겠지만
뻔뻔하기는 해도 그럴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기에 강변할 수 없습니다.
강변하기에는 우선 제가 진정 모든 것을 버렸는지가 양심에 걸립니다.
집, 형제나 자매, 아버지와 어머니, 자녀와 토지는 분명 버렸지만
이것들 말고는 제가 다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게 필요한 것은 다 갖고 있고 넘치게 소유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자유로움, 편안함, 편리함까지 소유하고 있으니
어떻게 제가 모든 걸 버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집, 형제나 자매, 아버지와 어머니, 자녀와 토지만 버렸고
그 밖의 다른 것은 진정 다 소유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것보다 더 저를 강변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 이름 때문에 집, 형제나 자매, 아버지와 어머니,
자녀와 토지를 버린 사람”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토지나 집을 진짜 버렸는지도 알 수 없지만
설사 토지나 집을 진짜 버렸을지라도 그것을 주님 때문에 버렸는지.
부모와 자식과 아내를 버리긴 하였지만 그것도 진정 주님 때문인지.
내가 자유롭기 위해서 버린 것인지,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버린 것인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버린 것인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버린 것인지.
한때, 그러니까 처음 수도 생활을 택할 때
나는 내 가족만 사랑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
온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고,
온 세상을 사랑하는 게 주님을 사랑하는 거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으며,
그런 생각을 가끔 갱신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갱신한다는 것 자체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갱신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살지 못했기에 갱신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베드로 사도처럼 보상으로
“그러니 저는 무엇을 받겠습니까?”하고 감히 여쭐 수 없습니다.
저뿐이 아니라 마르코와 루카 복음에도 이 말은 빠져 있습니다.
그러니 베드로 사도가 채근하여 보상에 대해 말하지 않았을 거고,
그리고 현세 보상에 대해서는 더더욱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니, 어쩌면 보상에 대해선 일체 주님께서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사실 주님을 따를 수 있는 것, 그 자체가 보상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나 따를 수 없는 주님 추종이 허락된 것, 그것이 이미 큰 복이고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즉시 행복인데
내세건 현세건 무슨 다른 미래의 복이 필요하겠습니까?
보상이란 지금, 여기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만 바라는 것이니까요.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