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늘 당신 이름으로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주님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일까?
제 생각에 그것은 이런 것일 겁니다.
예를 들어 내가 운영하는 식당을 한식 식당이라고 이름을 걸면
요즘 한류 시대에 다른 나라나 민족의 식당들과 다름은 물론이고,
내 식으로 하는 내 이름의 식당이 아니라 한식 범주에 드는 식당을 말하는 거지요.
마찬가지로 주님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악마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인간적으로 또는 내 꼴리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악마처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인데
이 말은 사실 애초에 말도 안 됩니다.
악마는 아예 받아들이지 않는 존재이니 말입니다.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남을 위한 자리 또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악마란 남을 위한 자리가 애초에 전혀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악마란 자기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파괴적인 존재잖습니까?
남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자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파괴하고,
어린이처럼 약한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군림하며 지배합니다.
그런데 하느님 이름으로 사는 사람은 하느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길 바라기에
하느님 뜻대로 사람들을 하느님 자녀로 곧 형제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어린이나 약한 사람이라고 차별치 않음은 물론 그러기에 더 사랑으로 보살핍니다.
다음으로 하느님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인간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이 하느님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인간이란 신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존재이긴 하지만
인간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면 동물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잖습니까?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하느님처럼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뜻이잖습니까?
그래서 내 새끼가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고,
내 편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고,
내 맘에 들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임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하느님의 이름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보편성을 말하는 것이고,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사랑도 자기애나 편애가 아니라 보편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겠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느님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이요 하느님 사랑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그 아이, 그 사람 싫지만 하느님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 아이, 그 사람을 하느님을 떼놓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며,
남의 새끼든 내 새끼든 하느님의 눈으로 보는 것이요,
더 나아가 그 아이, 그 사람이 바로 하느님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생애적으로 노력하니,
다시 말해서 일생 그렇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니
점차 그렇게 되어감을 느끼는데 여러분도 그러실 겁니다.
프란치스코 뮤지컬 공연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3차 공지사항을 저희 관구 홈페이지 <자유나눔>에 올리겠습니다.
골자를 여기서 조금 말씀드리면
서울에서의 공연에 너무 많은 분이 몰려 바로 매진되어 버렸고
그래서 그 횟수를 한번 늘리게 되었습니다.
출연 배우들의 일정 때문에 서울(11월 16일)에서 한번,
광주(11월 15일)에서 공연 하나 간신히 더 늘렸습니다.
더 자세한 것은 오늘 오후 <자유나눔>에 공지를 올릴 것이니
거기에 들어가서 보시기 바랍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