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알아보는 표지
나는 보았습니다. 그러나 눈으로만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비둘기처럼 내려오시는 성령은 번개처럼 소란하지 않았고 폭풍처럼 세상을 뒤흔들지도 않았습니다. 그분은 조용히, 머무르셨습니다. 머문다는 것은 정복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머문다는 것은 지배하지 않는다는 고백입니다. 성령은 늘 관계 속에 머무시는 분입니다. 위에 군림하지 않고 아래로 스며들며 사이와 사이를 적십니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을 알아보는 표지는 기적의 크기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흘러나오는 선의 방향이라는 것을. 그분이 계신 자리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이용하지 않고 상처가 계산되지 않으며 가장 작은 이가 밀려나지 않는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된 자리는 언제나 관계가 살아나는 자리였습니다. 닫힌 마음이 열리고 굳어 있던 손이 풀리며 두려움이 환대로 바뀌는 자리. 나는 그 선의 흐름을 보았습니다. 정죄 대신 자비가 흐르고 우월 대신 연대가 흐르며 힘 대신 내어줌이 흐르는 것을. 그래서 나는 증언합니다. 그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은 우리를 물 위로 들어 올리시는 분이 아니라 관계의 깊은 물속으로 이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알아보는 표지는 무엇일까요?
증언 · 증거 · 증명 · 증인
신앙은 증명에서 시작되지 않는습니다. 하느님은 실험실의 대상이 아니시고 사랑은 공식으로 입증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흔히 증명을 원합니다. 틀림없음을 보장해 달라고, 의심할 여지없는 결과를 내놓으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말합니다. “나는 보았다.” 그리고 그 말이 신앙의 시작이었습니다.그곳에서 우리는 서로를 살리고 서로에게 머물며 선이 되도록 부름받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관계 안에 머무십니다. 선이 흐르는 곳, 그곳이 곧 그분을 알아보는 표지입니다.
증거란 손에 쥔 확실성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드러난 흔적입니다. 누군가 다시 숨을 쉬게 되었고 누군가 고개를 들었으며 누군가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니게 되었을 때, 그 변화의 자국이 증거가 됩니다.
증언은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그 선의 흐름 안에 발을 적셨다는 고백입니다.“나는 알지 못했으나 그분이 머무시는 것을 보았다.” 그 정직한 고백이 가장 강한 증언이 됩니다.
증명은 하느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스스로를 증명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를 신뢰하십니다. 사랑을 강요하지 않듯 진리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증명을 요구하는 대신 증인을 부르십니다.
증인은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삶이 조금 바뀌어 버린 사람입니다. 덜 판단하게 되었고 더 기다리게 되었으며 자기중심에서 관계의 중심으로 옮겨간 사람. 증인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선이 흐르도록 자리를 내어준 사람입니다. 그의 삶이 조용히 말합니다. “그분이 여기에 계셨다.”
프란치스칸의 길은 증명하지 않는 길입니다. 대신 살아 보이는 길입니다. 가난으로,작음으로, 관계의 책임으로.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묻습니다. 내가 붙잡고 싶은 것은 증명인가, 아니면 증인이 되는 삶인가? 성령은 여전히 비둘기처럼 내려와 사람 위가 아니라 관계 위에 머무르십니다. 그 선이 흐르는 곳, 그 자리가 바로 가장 조용하고 가장 진실한 하느님의 증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