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묵상
예수님의 권위는 지배하거나 강요하는 힘이 아니라, 사랑으로 사람을 살려내는 힘이었으며 자신을 비움으로써 타인을 일으키는 권위였습니다. 세상이 이해하는 권위가 “위에 서는 힘”이라면, 예수님의 권위는 아래로 내려가는 힘입니다. 오늘 복음 안에서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묵상을 해보았습니다.
1. 말씀의 권위
말씀의 권위는 삶에서 흘러나오는 진리였습니다. 복음서에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 있게 가르치셨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삶과 말의 분열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설명하지 않고 살아내셨고, 논증하지 않고 몸으로 증언하셨습니다. 말씀의 권위는 지식의 깊이에서 나오지 않고, 말씀에 자기 자신을 내어맡긴 삶에서 흘러나옵니다.
2. 치유의 권위
예수님의 권위는 회복시키는 힘 치유의 권위였습니다. 그분의 권위는 사람을 정죄하지 않고 회복시켰습니다. 병자를 고치시고 죄인을 일으키시며 배제된 이를 공동체로 되돌리십니다. 이 권위는 “너는 틀렸다”가 아니라 “너는 다시 살아도 된다”고말하는 힘입니다. 참된 권위는 사람을 작게 만들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다시 서게 합니다.
3. 자유의 권위
예수님의 권위는 강요하지 않는 자유의 권위였습니다. 그분은 결코 억지로 따르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원하면 나를 따라라.” 그분의 권위는 선택을 빼앗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유를 돌려줍니다. 강요가 없는 이유는 단 하나, 사랑은 명령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4. 십자가의 권위
예수님의 권위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드러난 힘이었습니다. 그분의 권위가 가장 분명히 드러난 순간은 기적의 순간이 아니라 십자가였습니다. 방어하지 않는 힘, 맞서지 않는 권위, 자기 생명을 내어주는 자비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으셨지만, 모든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권위의 역설입니다. 나를 내어줌으로써 너를 살리는 힘이었습니다.
5. 섬김의 권위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주님이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분의 권위는 높은 자리에서 명령하는 권위가 아니라 관계를 살리는 권위, 타인의 필요 앞에 무릎 꿇는 권위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위에서 누르는 권위가 아니라 함께 내려가는 권위, 복종을 요구하는 힘이 아니라 신뢰를 낳는 힘이고 자신을 세우는 권위가 아니라 타인을 살리는 권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권위는 두려움을 낳지 않고 평화를 낳고, 침묵을 강요하지 않고 자유로운 응답을 부릅니다. 그분의 권위 앞에서 인간은 작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참된 자기 자신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프란치스칸 영성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권위를 살펴봅니다.
프란치스칸 영성에서 예수님의 권위는 다스림의 힘이 아니라 닮아감의 초대입니다. 그 권위는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이 아니라, 가난과 형제성의 자리에서 조용히 스며드는 빛입니다.
권위는 ‘높음’이 아니라 작음에서 태어납니다. 프란치스칸의 영성의 핵심 중의 하나는 작음입니다. 예수님은 권위를 주장하지 않으셨고, 작아지심으로 권위가 무엇인지 드러내셨습니다. 말구유의 가난, 떠돌이의 무소유, 십자가의 무력함이었으며 이 작음은 패배가 아니라 사랑이 택한 자리였습니다. 프란치스칸에게 권위란 도구적 존재로 살아가면서 자기 자리를 비워 하느님이 일하시도록 내어드리는 공간입니다.
권위는 지배가 아니라 형제성을 낳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관계를 세웁니다. 그분은 “종”을 만들지 않고 형제자매를 부르셨습니다. 프란치스칸 전통에서 권위있는 사람은 앞서 걷는 지도자가 아니라 가장 뒤에서 짐을 함께 지는 형제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칸의 권위는 말합니다.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함께 이 길을 걷자.”고 초대하는 권위입니다.
권위는 명령이 아니라 모범입니다. 예수님은 설명보다 삶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프란치스칸에게 권위는 규칙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형태, 삶에서 나온 복음입니다. 가난을 말하기 전에 가난하게 사신 분, 용서를 가르치기 전에 먼저 용서하신 분, 섬김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발을 씻기신 분이셨습니다. 권위는 강요될 수 없습니다. 경험된 진실만이 사람을 움직입니다.
권위는 소유하지 않고 내어줍니다. 프란치스칸 영성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권위를 소유하려는 욕망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권위도 움켜쥐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능력도, 명예도, 생명도 관계 안에서 흘려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참된 권위는 내가 강해질수록 커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라질수록 선명해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프란치스칸 권위의 절정이었습니다. 프란치스칸 영성에서 십자가는 승리의 상징이 아니라 사랑의 극단입니다. 맞서지 않는 힘, 변명하지 않는 권위, 침묵으로 증언하는 진리입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아무것도 통제하지 않으셨지만 모든 것을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칸이 믿는 권위의 정점입니다. 자기를 완전히 내어주는 자유로 너를 살려내는 거기에서 발생하는 기쁨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묻는 질문해봅시다. 프란치스칸 영성에서 예수님의 권위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선택입니다. 나는 관계 안에서 더 작아질 수 있는가? 내 말보다 내 삶이 복음을 말하고 있는가? 누군가를 움직이려 하기보다, 하느님이 일하시도록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가? 권위는 직책에서 오지 않습니다. 닮아감에서 옵니다. 결론적으로 프란치스칸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권위는 세상을 압도하는 힘이 아니라 세상을 품는 힘입니다. 그 권위 앞에서 우리는 복종당하지 않고, 형제로 초대받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