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복음에서 우리는 시메온 이야기를 들었다면
오늘 복음에서는 한나 이야기를 듣습니다.
시메온에 비해 한나 이야기는 비교적 짧고
더 나아가 한나가 아기 예수님에 대해서 한
말이나 행동을 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나가 어떤 사람인지를 길게 전합니다.
한나를 소개하는 구절의 양이
시메온을 소개하는 부분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한나의 말이나 행동을 볼 수 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한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느낌입니다.
굳이 그렇게 한나를 소개해야할까 생각하다보니
한나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녀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하느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면서
그것이 이루어질 것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에
어려움 속에서도 그렇게 오랜 시간
하느님을 섬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희망은 이제 이루어졌습니다.
어제 시메온이 찬양한 것처럼
한나도 아기를 보면서 기쁨에 넘쳤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속량, 우리의 구원을
희망할 수 있습니다.
삶의 어려움이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늘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꿈꿀 수 있습니다.
사무엘기에 있는 똑같은 이름의 한나가
기도를 통해 아들을 얻은 것처럼
우리의 기도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복음의 한나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여든네 살이 되도록 오랜 시간 기도했지만
그리고 그 시간이 결코 쉽지는 않았겠지만
희망이 있었기에 그 오랜 시간의 기도가 가능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오심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기 위한 것임을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 빛으로 찾아오시는 주님께
우리도 마중나가면서
희망을 갖고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