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다른 사람들은 다 떠나고
루카 복음사가만 자기 옆에 남아있다고 전하고 있고,
그렇지만 주님께서 곁에 계시면서 자기를 지켜주신다며
자기 심정을 담담하게 토로합니다.
이런 루카 복음사가를 오늘 축일을 맞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아니 루카 복음사가의 어떤 면을 본보기로 삼아야 할까요?
그리스도교 두 기둥 중 하나인 바오로 사도의 충실한 동반자로?
다른 사람들은 다 떠나도 끝까지 함께한 의리의 사나이 정도로?
루카 복음사가가 그러한 존재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바오로를 떠났던 사람 중 하나인 데마스처럼
현세를 쫓지 않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바오로 쫓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바오로라는 한 사람에게 충성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과 하느님의 공동체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그 공동체는 주님께서 바오로를 통해 이방인들을 위해 세운 교회였고,
이 공동체 안에서 그는 바오로와 초대교회 목격 증인들을 통해 전해진
주님과 주님의 가르침이 잊히지 않도록 기록으로 남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루카 복음과 사도행전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충실했던 대상은 바오로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였고,
그 방법이 바로 기록이었으며 기록도
주님께 대한 기록뿐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기록이었습니다.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공동체 안에서의 악인과 덕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악인은 말할 것도 없이 공동체를 파괴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공동체 안에서 악한 것을 퍼 나릅니다.
악행들만 퍼 나름으로써 악을 퍼트리고
비판하고 비난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악을 퍼트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공동체에 대해 실망하게 하고,
공동체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지게 함으로써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그러나 덕인(德人)은 말할 것도 없이 그렇지 않습니다.
덕인은 주님을 충실히 따랐던 덕인들의 덕행을 전합니다.
이 덕인들을 교회는 사도라고도 하고 성인들이라고 하며,
프란치스칸들은 프란치스코의 잔 꽃송이들이라고 합니다.
잔 꽃송이들이란 프란치스코 나무에 핀 작은 꽃들이라는 뜻이지요.
저는 작은형제회 한국 관구의 잔 꽃송이들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싶습니다.
이것이 제가 나이 먹어 공동체를 위해
제가 해야 할 마지막 사명이요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공동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저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좋은 것을 많이 기록함으로써 좋은 기억을 많이 간직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공동체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고 구원을 향해 같이 가는 방법입니다.
저는 루카의 사도행전에서 이런 영감을 받았기에
복음사가로서뿐 아니라 사도행전의 저자로 루카를 기리는 오늘 저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