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어제까지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위선자라고 나무라신 주님께서
오늘은 제자들을 당신의 벗이라고 부르시며
제자들이 당신의 벗으로서 취해야 할 태도를 알려 주십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위선은 조심하되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하느님을 두려워하라 하시는데 왜 그리 해야 하나 하면
하나는 제자들이 주님의 벗들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 사랑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하느님 사랑 안에 있는 주님의 벗들이라면
주님의 벗답게 박해자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자
주님의 벗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벗이라는 고귀한 자의식과
하느님 사랑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라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의 벗이라면,
그러니까 위선자들의 벗이 아니라 주님의 벗이라면
먼저 자기의 고귀함에 대한 자의식과 자부심이 있어야 하고,
그렇기에 박해자나 적대자들을 하찮게 여길 수 있어야 하며,
그렇기에 그들을 도무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잘 아시듯 주님의 벗이라는 자의식과 자부심은 교만과는 다릅니다.
교만이 남과 비교하여 우월감을 가지고 남을 깔보는 것이라면
자부심은 나를 소중히 여기기에 남과의 비교 대상으로
자기를 함부로 내놓지 않는 것이며 요즘 말로 비교 불가인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주님의 벗이고 하느님 사랑의 고귀한 대상인데
어쩌자고 나를 하찮은 인간의 비교 대상으로 내놓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여길까 전전긍긍하고 더 나아가 두려워한다는 말입니까?
이것은 보물을 싸구려를 파는 시장에 내놓는 것과 같습니다.
보물은 보물답게 있어야 하고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 사랑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장에서 몇 푼에 팔리는 참새보다 귀한 존재이며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시는 하느님 사랑 안의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