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죄인들 가운데서 첫째가는 죄인이라고 하며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자비를 베푸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죄가 없으면 자비를 베푸시지 않는다는 말로
우리가 이 말을 알아들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죄 없는 사람도 없지만 죄 없다고 자비에서 제외하실 하느님은 아니지요.
그렇습니다.
죄 없는 사람도 없고 하느님 자비에서 제외되는 사람도 없다!
이것이 우리 믿음입니다.
제 생각에 자비란 사랑 중에서 죄인에게 주어지는 사랑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 죄와 자비, 자비와 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모든 죄인이 하느님 자비와 저절로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늘 하는 말이지만 하느님께서 모든 죄인에게 예외 없이 자비를 베푸셔도
그것을 바라는 사람도 있지만 원하지도 않고 청하지도 않는 사람이 있고,
하느님 자비가 뭔지도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 자기가 죄인인 것도 모르고,
죄인이기에 하느님 자비가 필요한 것도 모르며,
그래서 하느님 자비를 바라지도 않고 청하지도 않는 죄인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느님께서 아무리 자비를 베푸셔도
하느님 자비를 원천적으로 만나지 못합니다.
바오로 사도도 이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면서 자기가 죄인이라고 생각지 않았고,
오히려 하느님을 열심히 섬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잘 아는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자기가 크나큰 죄인임을 깨닫게 되어 주님께 돌아서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사도 바오로의 그 유명한 회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하느님과 하느님의 은총을 만나야 비로서 회개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 가운데도 신앙이 없는 사람과 똑같은 죄인이 많습니다.
하느님 은총은 만나지 못하고 자기 죄만 만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회개를 시작했어도 완성은 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자기 죄의 어둠에 파묻혀 아직 빛을 보지 못하고 죄책감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옷으로 치면 더럽다고 방구석에 처박아 놓고 있거나
빨래한다고 했지만 아직 햇빛에 널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런 경우가 있는데 기껏 고백성사를 보고도
아직 하느님 자비를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빨래는 햇빛에 널어야 합니다!
시작한 회개는 완성해야 합니다!
우리 죄는 하느님 자비를 꼭 만나야 합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