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오늘 독서와 복음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를 묵상케 합니다.
발라암의 예언은 어디에서?
세례자 요한의 증언은 어디에서?
그리고 내 생각은 어디에서?
내 생각이니 나에게서 나온 것인가? 하느님께서 영감으로 주신 것인가?
오늘 독서 민수기에서 발라암의 예언은 신기합니다.
그는 이민족의 예언자인데다가 역시 이방인의 왕인 모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부탁받았는데도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이 먼 훗날 잘 될 것이라는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말은 그에게서 나온 말이 아니라 성령을 받아 전하는 신탁이었습니다.
“그때에 하느님의 영이 그에게 내렸다.
그리하여 그는 신탁을 선포하였다.”
그런데 그는 자기의 말을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의 말”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되었냐 하면,
“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되었다.”라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쓰러짐’과 ‘눈뜨임’이라는 역동이 있는데,
이것은 바오로 사도의 엎어짐과 새롭게 눈 뜸을 연상케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을 말살하려고 했는데
엎어짐과 함께 눈이 멀었다가 새로운 눈이 열리면서 증언자가 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그의 인간적인 생각이 뒤집히고 새로운 눈이 열린 것은,
순전히 하느님께서 하신 것이고 그가 한 것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도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리고 입이 열리기 위해서는 쓰러지고 엎어져야 하는데
우리의 인생길에서 뜻하지 않게 쓰러지고 엎어지는 일이 일어날 때 그것이
나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일 줄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뜻이 아니니 하느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주 나의 하느님은 나를 쓰러뜨리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하는 분이시며,
눈과 입이 닫히게도 하시고 열리게도 하시는 분임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