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여라. 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그들이 주님의 영광을, 우리 하느님의 영화를 보리라.”
대림 2주일은 ‘회개하라!’ 주일이고,
대림 3주일은 ‘기뻐하라!’ 주일입니다.
대림 2주일 가르침대로 회개하였다면
이제 기뻐할 수 있게 되었으니 기뻐하라는 얘기입니다.
왜냐면 우리의 회개가 세속인의 회개가 아니고 신앙인의 회개라면
세상을 향했던 내가 주님께로 돌아선 것이기에
이제 주님으로 인해 희망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그러니 기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겠습니다.
저는 여기서 로또의 행복을 예로 들어 오늘 희망과 기쁨을 얘기하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이 매주 로또를 산다고 제게 얘기하였습니다.
그래서 일확천금의 꿈을 꾸고 있고 그것이 이루어지리라고 믿기에 사느냐 물었더니
자기는 그런 꿈과 믿음 때문이 아니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세속적인 행위가 아니니 다행이다 생각하며 그러면 왜 사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로또를 사서 부적처럼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한주의 희망이 생겨서
한주 내내 뿌듯하고 희망을 지니고 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로또의 행복이 두 가지인데 로또에 당첨돼 기쁜 행복이 하나이고,
로또에 당첨될 것이라는 희망 때문에 기쁜 행복이 다른 하나이며,
완료형이 하나이고 미래진행형이 다른 하나입니다.
그런데 통계에 의하면 당첨된 사람은 엄청 기쁘고 행복한 순간이 있었지만
그 기쁨과 행복은 당첨된 순간이었을 뿐 얼마 지나지 않아 더 불행하게 된답니다.
그 이유를 보면 하나는 그 돈으로 방탕하게 살기 때문에 다른 하나는
돈을 욕심내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돈도 건강도 사람도 다 잃기 때문입니다.
저도 군대에서 그런 체험이 있었습니다.
고된 훈련으로 배가 너무 고프고 늘 고팠으며 집단 허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식사 종이 울리면 친구들은 쏜살같이 달려가고 그래서 긴 줄이 생기는데
저는 일부러 늦게 가 맨 뒤에 섭니다.
속으로 먼저 먹으려고 하는 놈들 한심하다고 하며 영적 우월감을 즐기지만
한 꺼풀 속으로 더 들어가면 저만의 희망 연장책이었던 것입니다.
경험으로 볼 때 일찍 먹고 나면 먹으리라는 희망은 사라지고 또 먹고 싶습니다.
실제로 먼저 먹은 친구들을 보면 먹고 나서도 또 주변에서 껄떡거립니다.
그걸 아는 저는 맨 뒤에 서서 얼마 안 있으면 먹게 되리란 희망을 오래 즐깁니다.
그때는 100m 뒤에서도 배급하는 곳을 뚫어지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집중합니다.
옆에 꽃이 폈어도 그것 눈에 들어오지 않고 누가 지나가도 보지 못할 정도입니다.
사실 한순간의 기쁨과 즐거움, 더 정확히 얘기하면
한순간일 뿐 더 이상이 없는 기쁨과 즐거움은 오히려 더 허기지게 할 뿐이니
우리는 완료형의 희망과 기쁨보다는 현재진행형의 희망과 기쁨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희망하는 것은 희망 고문이 아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희망하는 것은 확실하고 틀림없는 희망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돈도 로또도 성공과 성취도 사람도 아닙니다.
우리가 희망하고 우리에게 현재진행형의 기쁨과 행복을 줄 것은 하느님입니다.
돈과 로또와 성공과 사람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하느님은 다 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우리 신앙인들이고 우리는 그 하느님께 희망을 걸며 기뻐합니다.
이 하느님을 믿습니까?
이 하느님을 사랑합니까?
이 하느님을 희망합시다! 그리고 기뻐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