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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12월 13일 토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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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부들의 말씀 묵상✝️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마태 17,12)

엘리야의 일을 한 사람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는 것은 제자들이 성경을 얽어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율법 학자들이 늘 그들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에 관한 말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군중 사이에 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도 “저는 그리스도라고도 하는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시겠지요."(요한 4.25) 하고 말했고, 사람들이 요한에게 ‘당신은 엘리야요? 아니면 그 예언자요?(요한 1,21 창조) 하고 물은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리스도나 엘리야에 관한 이런 견해가 널리 퍼져 있었지만, 그것은 옳은 해석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두 번 오신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미 일어난 지금의 오심과 앞으로 있을 재림이 그것입니다. 바오로는 이에 대해 ‘과연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이 은총이 우리를 교육하여 불경함과 속된 욕망을 버리고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 줍니다." (티토 2,11-12) 하고 말했습니다.
첫 번째 오심을 잘보고 두 번째 오심에 대해 바오로가 뭐라고 하는지 잘 들으십시오. 그는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우리의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우리"(티토 2.,3) 라고 합니다.
예언자들도 두 번의 오심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로 오실 때에는 엘리야가 선구자로 올 것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 오심의 선구자는 요한이고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을 엘리야라고도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요한이 엘리야라서가 아니라 그가 엘리야의 일을 했기 때
문입니다. 엘리야가 두 번째 오심의 선구자일 것이듯이, 요한은 첫 번째 오심의 선구자였습니다.
그러나 이 일들을 혼동하고 사람들을 나쁜 길로 이끄는 율법 학자들은 두 번째 오심에 대해서만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서 ‘이자가 그리스도라면, 엘리야가 먼저 왔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외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셋째 오솔길】
돌파하여 자기 하느님을 낳기
설교 25 우리의 신성
이것을 위해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마라고 하셨다(사도 1,4),
자기 내면의 자유와 일치를 맛보는 사람도 … 평화와 고요 속에서 하느님을 모셔 들였다면. 또한 그는 소음과 불안 속에서도 하느님을 모셔 들여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에서 하느님을 모셔 들이는 것만큼 떠들썩하고 불안한 상태에서도 하느님을 모셔 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엑카르트는 이와 같이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는 이 돌파와 성령 세례가 우리가 경험하는 마지막 탄생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더 많은 산고와 더 많은 탄생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원천은 우리의 깊고 깊은 소용돌이다. 우리가 버림을 실천하고 탄생이 일어나게 할 때, 영은 그 소용돌이 속에서 헤엄을 치고, 우리는 그 속으로 점점 더 깊이 가라앉을 것이다.
성령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벙해하는 장애물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이분법적 의식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하나만을 찾아다니다가 둘을 찾았다.
그러한 분열과 불일치는 빈 들 경험이 일으키는 일치를 파괴하고 만다. 황홀은 분열을 용납하지 않는다. 황홀은 하나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신적이라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때문에 “하느님이 몸소 사람이 된 것이야말로 그분이 사람과 나눈 가장 맞갖은 선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525)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2월 1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2티모 1-4장 / 티토 1-3장
<생태 돌봄 주간> 자신. 이웃. 동물과 식물. 자연환경

✝️ 토요일 이웃 종교(생태)의 날✝️
이름 없는 하느님, 김경재
종교다원론과 해석학적 이론들
종교 다원론에는 다양한 입장이 있다
포용주의적 입장이 지구촌의 종교 다원론 담론에서 문제가 되는 점은, 그 입장은 타 종교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되 자기가 귀의하는 종교의 절대적 우월성과 가치 판단의 규범성을 주장한다는 점에 있다. 사실 이 점은 매우 민감한 쟁점 이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인은 명시 적으로는 아닐지 모르나 자기가 귀의하는 종교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자부심과 일차적 충성을 당연히 지니지 때문이다. 이런 감정은 암묵적으로 자기가 귀의하는 종교가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영성적으로 제일 우월하다는 내면적 신념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다.
반드시 타 종교가 지기 종교보다 열등하다고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그러한 주체적 신념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또 그러한 태도를 나무랄 수 없는 것은 진정한 신앙적 태도란 시장에서 물건 고르듯이 하는 일과 달라 전인적 진지성을 가지고 참여하는 궁극적 관심'의 사항이기 때믄이다.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종교 다원주의적 태도는 이러한 포용주의적 태도가 지닌 문제점을 진지하게 문제삼는 학문적 반성 위에서 , 그리고 보다 가까워진 세계의 다양한 종교들과 그 문화들의 역동적 실재성에 대한 심화된 이해 과정에서 태동되었다. 특히 인간의 종교 체험을 포함한 모든 인식 행위와 경험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제한받는다는 인간의 해석학적 통찰에서부터 연유한다.'(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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