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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9월 1일 월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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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부들의 말씀 묵상✝️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잡혀 간 이들이 해방되는 희년
그분께서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 여기서 ‘가난한 이들’은 다른 민족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정말로 가난했으니까요. 그들에게는 하느님도, 율법도, 예언자도, 정의도, 나머지 다른 덕들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하느님은 그분을 가난한 이들에게 보내어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을까요? ”잡혀 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가 그 답입니다. 우리는 잡혀 간 포로들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사탄에게 묶인 채 사로잡힌 신세가 되어 그에게 복종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잡혀 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바로 이 말씀과 그분 가르침의 선포로 눈먼 이들이 앞을 봅니다. 그런즉 그분의 ‘선포’는 잡혀 간 이들’만 아니라 ‘눈먼 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예수님께서 치유하여 떠나보내신, 짓밟히고 부서진 사람들이 바로 이 억압받는 이들이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 이 모든 것이 선포된 것은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운 해’로 돌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눈을
떠 보게 되고, 사슬에서 풀려나고, 모든 상처가 치유되는 때입니다.

-오리게네스-

✝️ 성인 / 영적 글 묵상✝️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20
버림과 그대로 둠은 어떻게 열매를 맺는가
여행 중에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르셨는데 마르타라는 여자가 집으로 모셔 들였다(루카 10,38).
이처럼 우리의 사랑은 단일해야 합니다. 평등과 일치가 있는 곳이 아니면 사랑은 있을 수 없습니다. 주인과 종 사이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사이에는 평등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남편은 서로 같지는 않지만, 사랑 속에서는 평등합니다. 이를 두고 성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느님은 남자의 머리나 발을 취하지 않고 남자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다(창세 2,22).
하느님이 남자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신 까닭은, 둘로 갈라진 곳에서는 부족함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한쪽은 다른 한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아님”이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이 “아님”은 쓰라린 아픔 이외의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평화도 자리하지 않습니다. 나의 손아귀에 사과 한 개가 쥐어져 있다고 해 봅시다. 그 사과는 나의 눈에 욕구를 불러일으키지만, 나의 입이 그 달콤한 맛을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반면에 내가 그것을 먹어 버린다면, 나는 나의 눈에게서 욕구를 빼앗아 버리는 셈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둘은 일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둘 가운데 어느 하나가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리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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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제5주간 생태 회심 주간✝️
<금주간 성서 읽기> 요한 1서 전체
<생태 회심 주간> 생태적 묵상

✝️ 월요일 거룩한 독서(렉시오디비나)의 날✝️
2. 빙엔의 힐데가르트, 정홍규
영성과 생활의 통합
오늘날 많은 이들이 삶의 의미를 추구하면서도 고갈되고 풍요와 안락을 추구하면서도 우리의 공동기반인 지구를 황폐화시키고 스스로 메말라 가는 것을 느낀다. 종교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많은 경우에 신앙과 생활이 다르게 별도로 움직인다. 전례, 의식에 참여하고 함께 활동하는 것으로만 당장 눈앞의 복을 기원하는 것으로만 채울 뿐, 일상생활에 당연한 부분들, 장을 보고 먹고 입고 일하는 것들은 영성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 또한 영성생활의 일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루하루 살아가고 사람들과 나누며 봉사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나와 우리 생활에 바탕이 되는 자연과의 나눔
과 교류에는 마음을 쓰고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는 바쁜 시간들이다.
이렇게 해서 창조의 세계 지구는 더더욱 황폐해지고 자연과 분리된 인간의 의식에선 경이로움과 신비함이 사라지면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몸과 영의 삶 또한 황폐해지고 이젠 곳곳에서 그동안 덮여 었던 이들의 증세가 심각하게 나타나는 정도에 이르게 되었다.
환경과 영성의 회복을 추구하는 눈으로 현대 학문들의 성과를 분석하면서 밝혀진 것은 결국 모든 문화에 담겨있는 지혜, 모든 영적인 전통의 중심에 담긴 깊은 통찰 안에 일치되는 내용, 곧 모든 것은 모
든 것과 상호 연결되는 관계에 놓여 있고 내재적인 것으로부터 초월적인 것으로의 역동적인 관계 안에서 지양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깊이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이웃과 창조의 세계와 이어져 있는 나의 삶 안에서 구원의 창조를 이어가는 깊은 영성을 느끼도록 찾아가야 한다. 몸과 영이, 우리와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며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고 일깨우며 지내도록 해야 한다.
사랑의 원리로 이어지는 창조의 과정에서 시대를 보고, 모든 창조물의 질서 안에서 대우주인 우주와 소우주인 인간의 연관을 보았던 12세기의 힐데가르트는 정신만이 아니라 몸의 오관을 통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심층생태학적인 영성을 일깨운다. 우리 자신인 자연으로부터의 소외, 우리가 함께 하는 자연환경으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고, 우리 자신의 신체기관들을 살아있는 체계인 땅(지구)에 통합된 부분
으로 제험하며, 개인적인 자아의 한계를 “생태적인 자아’로 확대하도룩, 그리고 함께 하는 환경 안에서의 “연대적인 존재”로서 스스로를 의식하고 그런 의식에 머무르도록 이꿀어 주는 다양한 길을 제시하
고있다.
일상생활 안에서, 자연의 모든 것들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접촉하며 이루는 관계 안에 있음을 깨닫게 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내적인 기쁨을 불러일으키고 충전될 수 있도록 우리의 감각과 정신을 일깨워준다. 지금까지 영성적인 줄기에서 다루지 않았던 부분, 부족했던 부분들을 영성적으로 다시 살도록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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