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오늘 주님 말씀은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다른 두 복음은 오늘 주인공을 그저 어느 부자라고 하는데,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오복음만 부자가 젊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젊은이에게 완전한 자가 되려면 이렇게 하라고,
곧 포기-나눔-따름을 완전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저는 이제 젊은이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복음의 젊은이와 비교해서
그리고 저의 젊었을 때와 비교해서 완전해졌는가?
완전해지는 것까지는 하지 못했을지라도 좀 나아지기는 했는가? 묵상했습니다.
첫째 포기 면에서 나는 완전해졌는가?
옛날과 비교하여 외형적으로는 제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물론 옛날이나 지금이나 소유 욕심 차원에서 소유하지 않고,
필요하기에 소유하고 있는데 언제든 포기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신감 때문인지 아니면 자기합리화 때문인지
전에 비해 저는 필요를 엄격히 제한하지 않고 있고
그래서 더 많이 소유하고 있으며 완전 면에서 오히려 퇴보했습니다.
둘째 나눔 면에서 나는 완전해졌는가?
앞서 포기 면에서 저는 전보다 퇴보했다고 했는데
제가 더 많이 소유하게 된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곧 저는 내가 가지고 있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누겠다는 생각으로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나눌 수 있는 제 것이 제게 어디 있습니까?
다 여러분이 주신 것이고 그것을 돌리는 것이요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제게 주신 것이고 그것을 돌리고 나누는 것이지요.
이 면에서 저는 옛날보다 완전해졌는지 분명치 않지만
나아진 것은 분명하고 적어도 자유로워진 것 같습니다.
셋째 따름 면에서 완전해졌는가?
앞서 봤듯이 포기 실천과 나눔 실천 면에서 주님을 잘 따랐다고 할 수 없고,
나아졌다고도 할 수 없지만 더 문제는 인격적인 따름입니다.
이 얘기는 이런 뜻입니다.
제가 이 세상 사는 동안 주님을 닮고
주님께서 실천하신 것을 따라서 실천하는 것도 따름이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절실한 것은 실천을 따라서 하는 정도가 아니라
주님을 떨어지지 않고 따라가 마침내 아버지 하느님께 가는 따름이지요.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을 따름도 중요하지만
주님을 따라서 저세상에 가는 것이 이제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많은 것처럼 살려고 합니다.
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죽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오늘 이렇게 제 얘기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너무 제 얘기를 한 것 같아 죄송한데 그래도 시간이 없으니 이렇게 끝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