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칸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 2
II. 얀센주의와 프란치스칸 신학
얀센주의의 주요 교리
얀센주의는 17세기 벨기에 이퍼르의 주교 코르넬리우스 얀센의 저서 《아우구스티누스》에서 비롯된 신학 운동입니다. 얀센주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총론을 극단적으로 해석하여, 인간의 자유의지가 원죄로 인해 완전히 타락하여 선을 행할 능력을 상실했다고 주장합니다. 초기 얀센주의자들은 예정론만 아니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추종자들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펠라기우스의 원죄 부정과 자력 구원설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얀센주의의 핵심은 하느님의 은총이 인간이 저항할 수 없는 본질적으로 효력 있는 은총이라는 '유효 은총 개념입니다. 이 은총을 받는 모든 사람은 반드시 회개하고 하느님께 나아간다고 보았으며, 이는 하느님의 의도가 실패할 수 없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견해와도 연결됩니다. 또한 얀센주의는 '제한 속죄를 주장하여,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위해 죽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구원하기로 선택한 소수의 사람들(선택받은 자)만을 위해 죽었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선택받은 자만이 구원받는다"는 극도로 엄격한 주장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교리적 바탕 위에서 얀센주의는 구원받은 자는 극도로 엄격한 신앙생활과 윤리를 강조해야 하며, 고해성사나 성체성사를 받기 위해서는 철저하고 오랜 준비를 요구했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단죄와 역사적 맥락
얀센주의는 17세기 프랑스에서 예수회와 교황지상주의에 대한 적대감으로도 특징지어졌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얀센주의를 공식적으로 단죄했습니다. 인노첸시오 10세 교황은 1653년에 얀센의 다섯 가지 명제(은총과 인간 의지와의 관계에 대한)를 단죄했으며 이후 여러 교황들에 의해 거듭 단죄되었습니다.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는 얀센주의의 근거지였던 포르루아얄 수녀원을 폐쇄하고 얀센주의자들을 추방하는 등 정치적 박해를 가하기도 했습니다. 교회는 얀센주의의 극단적인 원리주의를 거부했는데, 이는 보편성을 존중하는 가톨릭 교회가 신앙생활의 이완과 지나친 엄격성 모두를 거부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얀센주의는 18세기 계몽주의와 결합하여 예수회, 절대왕정, 교황지상주의에 맞선 투쟁을 벌였고, 프랑스 혁명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 얀센주의는 점차 쇠퇴했으며,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황 무류성 교리가 선언되면서 관련 논쟁이 종결되었습니다.
프란치스칸 신학의 입장 :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과 보편적 구원 의지
프란치스칸 신학은 얀센주의의 극단적인 엄격주의, 즉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의지 관계에 대한 비관적이고 제한적인 시각에 반대합니다. 얀센주의가 제시하는 "완벽하게 하느님과 하나 될 수 없다는 절망감" 은 프란치스칸이 강조하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과 창조의 기쁨 과 대조됩니다. 프란치스칸 신학은 하느님이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며,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얀센주의의 제한 속죄와 "선택받은 자만이 구원받는다"는 주장에 대한 근본적인 반박이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보편적이며, 그분의 은총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것이 프란치스칸적 관점입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얀센주의의 가장 강력한 반대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얀센주의가 하느님의 진노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인간의 죄 많은 본성 때문에 하느님의 계명 중 일부는 선하고 의로운 사람조차 지킬 수 없다고 주장하며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점을 비판했습니다. 살레시오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며,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협력을 통해 은총이 달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얀센주의가 요구하는 예외적인 고행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와 일상적 덕행의 실천을 통해 영적 성장이 이루어짐을 보여줍니다.
얀센주의는 하느님을 엄격하고 심판적인 존재로, 은총을 제한적으로 부여하는 분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용납하지 않는 정의의 하느님에 가깝게 하느님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반면 프란치스칸 신학은 하느님을 무한히 자비롭고 사랑이 넘치며, 모든 창조물에 현존하는 분으로 이해합니다. 프란치스칸의 하느님은 인간의 고통에 연대하고 사랑으로 생명을 부여하는 사랑의 하느님입니다. 이러한 하느님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차이가 구원론, 은총론, 도덕론 전반에 걸쳐 극명한 대립을 야기합니다. 얀센주의의 엄격한 하느님 관은 신자들에게 과도한 불안감과 절망감을 안겨줄 수 있으며, 성사 생활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는 신앙을 '기쁨'과 '사랑'의 경험이 아닌 '의무'와 '두려움'의 영역으로 축소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칸 신학은 이러한 관점을 거부하며, 하느님의 은총은 인간의 노력 여부와 관계없이 주어지는 선물이며, 이를 통해 기쁨과 평화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얀센주의는 초기에는 신학적 운동이었으나, 점차 절대왕정에 대한 반대와 계몽주의 사상과 결합하며 정치적, 철학적 측면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는 프랑스 혁명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으며, 얀센주의자들은 기존 권위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반면 프란치스칸 영성은 직접적인 정치적 혁명보다는 "사회 정의를 모델링하고, 각 개인과 피조물에게 현존하며, 사회의 바닥에 있는 이들을 선호하는" 방식으로 사회 변혁에 기여합니다. 이는 근본적인 사랑과 연민을 통한 내적 변화와 공동체적 실천을 강조합니다. 얀센주의의 엄격한 도덕주의와 '선택받은 자' 사상은 엘리트주의적 경향을 낳을 수 있었고, 이는 사회적 분열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반면 프란치스칸의 '모든 피조물에 대한 사랑'과 '개인의 존엄성' 강조는 포용적이고 통합적인 사회적 실천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