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자의 기도
나는 창조라는 거대한 숲속에 선 한 그루의 이름 모를 나무입니다. 시간의 강물 위로 영원하신 하느님의 신비가 거대한 그림처럼 펼쳐질 때, 나는 그저 그 풍경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입니다. 다른 모든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분의 숨결로 잠시 피어났다 스러지는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작은 깨달음 속에서 비로소 참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남보다 낫다는 교만도, 못하다는 비하도 더는 내 안에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세상이 주는 잣대로 나를 묶던 보이지 않는 사슬이 끊어지고, 오직 하느님 안에서 아이처럼 숨 쉬는 기쁨을 누립니다. 내가 가진 모든 좋은 것들, 순간의 기쁨과 작은 재능, 사랑의 기억들마저 모두 그분에게서 온 선물이기에, 본래부터 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나의 무력함이 그분의 능력이 머무는 자리가 되어 나의 모든 갈망은 이제 단 하나의 소망으로 모입니다. 제 삶이 아버지의 이름을 빛내는 작은 촛불이 되고, 메마른 세상에 그분의 나라가 오게 하는 보잘것없는 씨앗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나의 갈망을 담아 먼지 속에 새겨진 노래를 불러봅니다. 나는 시간의 강가에 잠시 머무는 하나의 생각, 영원을 머금은 신적인 숨결이 빚어낸 한 줌의 먼지입니다. 저 광활한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의 궤적과 내 안에서 고동치는 심장의 박동이 모두 하나의 거대한 신비, 곧 영원하신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 이야기 안에서 펼쳐집니다. 나는 그 이야기의 주인이 아니라, 그 안에 초대받은 작은 등장인물이며, 내 존재 자체가 이미 내가 받을 자격 없는 첫 번째 선물이자 응답입니다.
'나'라고 주장했던 모든 것들이 허물어지는 그 자리에서, 비로소 참된 자유가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가진 지성과 감성, 건강과 재능, 심지어 사랑을 주고받는 능력까지도 모두 그분에게서 흘러온 은총의 강물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내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는 이 '거룩한 가난'의 깨달음 속에서, 저는 비로소 세상의 어떤 소유도 줄 수 없는 깊은 평화를 맛봅니다.
온전히 제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부끄럽게도, 그것은 이 선물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뒤틀어버리는 저의 완고함, 하느님의 빛을 등지고 스스로 만들려 하는 이기심의 그늘, 곧 죄와 악습의 깊은 뿌리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비참함 속에서 절망하지 않습니다. 저의 이 공허함과 깨어짐이야말로, 하느님의 자비가 머물고 삼위일체 하느님 관계적 선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가장 큰 약함이, 그분의 가장 큰 능력을 만나는 통로가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깨달음의 제단 위에서, 제 영혼은 마침내 하나의 응답을 향해 고개를 듭니다. 그것은 자신의 전 존재를 내어 맡기며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빕니다."라고 가브리엘 천사에게 말씀하셨던 마리아처럼 이 응답은 수동적인 체념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가장 능동적인 신뢰의 행위로 성장하였습니다 저의 의지를 그분의 뜻에 맞추고, 저의 삶을 그분의 계획을 담는 그릇으로 기꺼이 내어드리려는 이 거룩한 갈망, 사랑받음에 응답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내어주려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선물로 받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걸어가야 할 구체적인 길 또한 그분께서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작고 가난하고 겸손하셨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길로 불러주셨습니다. 모든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그 성인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하는 갈망. 놀랍게도 이 거룩한 갈망마저도 제 안에서 솟아난 것이 아니라, 저를 그 길로 부르시는 그분의 또 다른 선물임을 저는 압니다.
저의 기도는 더 이상 무언가를 구하는 청원이 아니라, 존재하는 방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더 이상 '나'를 내세우지 않고, 오직 그분의 사랑이 저를 통해 세상에 스며들어 제 삶의 모든 순간이, 먼지 같은 저를 들어 당신의 신비를 노래하게 하신 하느님께 바치는 하나의 소박한 찬미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