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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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요한 20,15)
영적 정원지기이신 예수님
예수님을 정원지기라고 생각한 마리아는 사실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당신 사랑의 힘으로 그녀의 기슴에 덕의 튼실한 씨앗을 심으셨으니, 마리아의 영적 정원지기 아닙니까? 그런데 마리아는 왜 정원지기라고 생각한 사람에게, 자신이 누구를 찾는다고 말하기도 전에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가셨으면..."이라고 했을까요? 마리아는 아직 자기가 누구를 그리워해서 우는지 말하지도 않았고 그분이 누구인지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힘은 본디 이렇습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사람을 다른 모든 이도 알고 있다고 믿게 만듭니다 ... 예수님께서는 처음에는 마리아를 일반적인 호칭을 써서 ‘여인아!’라고 부르시고, 그다음엔 ‘마리아야!’ 하고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너를 알아보는 이를 알아보아라’라고 말씀하신 것과같습니다. … 마리아는 이름을 불리자 자신의 창조주를 알아보고 곧바로 그분을 ‘라뿌니’, 곧 ‘스승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분은 마리아가 외적으로 찾는 분인 동시에 마리아가 당신을 찾도록 내적으로 가르치고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대 그레고리우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셋째 오솔길】
돌파하여 자기 하느님을 낳기
설교 21
세가지 탄생
우리의 탄생, 하느님의 탄생, 하느님 자녀인 우리의 탄생
평화로운 침묵이 온 세상을 덮고 밤이 달려서 한고비에 다다랐을 때(지혜 18,14).
어떤 사람이 이런 식으로 하나의 상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오감을 통해 밖에서 들어오게 마련입니다. 영혼이 자신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성의 대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혼은 자신의 상을 만들 수도 그럴 수도 없다." 영혼이 자신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은 불가피한 매개물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혼의 내부는 자유로워서 어떠한 매개물이나 어떠한 상의 방해를 전혀 받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어떤 상이나 모상 없이 영혼과 거리낌없이 결합하시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영성의 대가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이러저러한 능력이 있다고 인정한다면, 여러분은 동일한 능력을 하느님의 것으로 돌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스승이 지혜로우면 지혜로울수록, 능력이 넘치면 넘칠수록, 그의 업적은 더욱 직접적으로 흘러 나올 것이고, 더욱 단순해질 것입니다. 바깥일을 하려면 여러 수단이 필요합니다. 마음먹은 일을 이루려면, 먼저 써먹을 재료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태양은 빛을 비추는 자신의 임무를 대단히 신속하게 수행합니다. 태양이 빛을 방출하자마자, 아득히 광활한 세계는 빛으로 가득 충만해집니다.
천사는 태양보다 더 월등합니다. 천사는 태양보다 더 적은 수단과 상을 가지고 일합니다. 최고의 천사, 곧 치품천사는 단 하나의 상만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보다 열등한 존재들이 다수로 붙잡는 것을 단 하나로 붙잡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어떠한 상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수단”이라든가 상이라든가 모상과 같은 것 없이 영혼 안에서 활동하십니다. 실로 하느님은 영혼의 터에서 활동하십니다. 하느님과 그분의 존재 이외에 어떠한 상도 영혼의 터에 이른 적이 없습니다. 어떠한 피조물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431)


<금주간 성서읽기> 갈라 4-6장 / 필리 1-4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거룩한 성심에 대한 묵상, 요셉 맥도넬 신부
성심에 대한 묵상
첫 번째 시리즈
첫 금요일 신심
VI.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의 이미지
제3 묵상. 십자가, 열린 상처
VII. 우리 각자를 향한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성심의 사랑에 대하여
제1 준비 묵상.
내 마음을 집중하기 위해, 나는 파레르모니알의 작은 수녀원 경당에서 복되신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곁에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때 우리 주님께서 나타나시어, 타오르는 불길 속에 있는 그분의 지극히 거룩한 성심을 보여주시며 이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말씀을 하신다.
“보아라, 이 마음을. 이 마음은 사람들을 이토록 사랑하였다.”
제2 준비 묵상.
가능한 한 뜨겁고 정성되게 이렇게 기도한다.
“오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성심이여, 제가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하도록 간청합니다.”
다음 세 가지 점을 묵상한다.
1. 이렇게 나를 사랑하시는 분은 누구인가?
2. 그분의 사랑의 대상인 나는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가?
3. 그분은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제1 묵상. 이렇게 나를 사랑하시는 분은 누구인가?
묵상.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삼위일체 하느님의 두 번째 위격이시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분이다. 그분은 온 우주의 위대한 창조주이시고, 만물의 주님이시며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신 분이시다. 그분은 무한히 지혜로우시고, 무한히 선하시며, 무한히 전능하시고, 무한히 행복하신 분이다. 그분은 결코 나를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니며, 나의 존재가 그분의 행복이나 권능, 위대함, 영광에 조금도 본질적으로 보탬이 되지 않는다. 오직 우연하고 외적인 방식으로만 극히 미미하게 더해질 뿐이다.
적용.
그러므로 나를 향한 성심의 사랑은 전적으로 무상이며, 나는 결코 그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 나는 그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 주님을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즉, 그분을 사랑하기 위해 희생이 요구될 때, 내 영혼이 메마르고 황량하여 감각적인 신심의 느낌조차 없을 때에도 여전히 그분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 주님을 위해 내 건강, 명예, 편안함, 심지어 필요하다면 생명까지도 기꺼이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켐피스는 말한다. “그리스도를 굳건히 사랑하는 사람은, 시험 중에도 자리를 지킨다. … 하느님은 그에게 형통할 때 기쁨을 주시듯, 역경 속에서도 실망시키지 않으신다. 관대한 사랑은 선물 안에서 만족하지 않고 모든 선물 위에 계신 하느님 안에서 쉰다.”
애정과 결심.
“오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성심이여, 저도 주님께 관대히 드릴 수 있도록 가르쳐 주소서. 주님께서 합당하게 받으시도록 제가 봉사하게 하시고, 주기만 하고 계산하지 않으며, 싸우되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일하고도 휴식을 바라지 않으며, 대가를 구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뜻을 이룬다는 그 마음만으로 만족하게 하소서, 오 나의 하느님.”
(성 이냐시오)(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