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탈출기는 이집트를 드디어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의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집트 탈출로 이제 가나안에 가기까지 위험은 사라졌다고
생각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뜻하지 않은 위기가 또 닥칩니다.
그런데 그 위기는 주님께서 그리하신 때문이라고 창세기는 얘기합니다.
“주님께서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므로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뒤를 쫓았다.”
말하자면 주님께서 만드신 위기인데 그것이
앞엔 홍해가 뒤엔 파라오의 군대가 있는
그야말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위기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도 죽고 뒤로 돌아서도 죽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이스라엘 백성은 혼란에 휩싸이게 되고,
그들의 마음도 갈팡질팡하며 어찔할 줄 몰라 합니다.
두려워하며 주님께 부르짖기도 하고,
왜 데려내 왔냐고 모세를 원망하기도 합니다.
제 생각에 이것이 딱 우리의 신앙 수준과 같습니다.
이렇게 앞도 막히고 뒤도 막히면 위를 봐야 하고
그래서 위를 보긴 보지만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이 불완전하기에 두려움도 있고 원망도 있습니다.
이때가 모세의 영도가 필요한 때이고
이때 모세는 확신에 차서 말합니다.
“두려워하지들 마라.
똑바로 서서 오늘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루실 구원을 보아라.”
이것은 주님께서 종말의 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어쩔 수 없습니다.
어차피 죽으니 모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뒤에서 파라오가 쫓아오지 않았다면 모세의 말을 듣지도 믿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파라오가 뒤에서 쫓아오니 믿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고,
믿고 홍해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믿기로 한 것입니다.
다른 수가 없으니 그리하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종종 우리를 이렇게 막다른 골목까지 모십니다.
그리고 뒤에서 쫓아오고 막다른 골목에 있게 되면
담쟁이처럼 담벼락이라도 타고 넘어가라 하십니다.
여기서 저는 시간이 없기에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를 소개하고 강론을 마칠까 합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중략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