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네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행복이고
그래서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라는 것에
아무도 예외가 없고 이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너무도 많은 사람이 행복하지 않거나 불행한데 왜 그런 것입니까?
그들은 행복의 길을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인생길이 행복의 길이 아니었던 겁니다.
아니면 그는 아브람처럼 행복의 길을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니면 주님께서 떠나라는 길은 아니 떠나고 자기 길을 갔을 겁니다.
아니면 떠나기는 했지만 가다가 힘이 든다고 멈춰 섰을 수도 있고요.
그러나 아브람은 그 길을 떠났고 끝까지 가서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마침내 복을 받고, 그 자신이 복이 되고, 복을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오늘 ‘아브람의 복’이라고 명명하려 하는데 그래도 되겠지요?
아시다시피 아브람이 애초에 복이 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늘 창세기는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라고 분명히 얘기하고 있지요.
그리하였기에 복이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떠나라고 하신 대로 그리했기에 복이 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순종이 있고 떠남이 있습니다.
명령에 순종함이 있고 명령대로 떠남이 있습니다.
떠나기가 싫어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과 다릅니다.
‘소확행(小確幸)’ 곧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한때 유행이었는데
지금의 소확행에 안주하여 참으로 많은 사람이 떠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누리지만,
떠나야지만 얻게 되는 미래의 온전하고 완전한 행복은
받지도 못하고 얻지도 못하고 그리하여 복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하여야 그리 되고 복이 되는 것인데
떠나라는 말씀대로 그리하지 않았기에 복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나의 작은 행복은 지금 내가 확실히 쥐고 있기에 행복하지만
주님께서 약속하신 미래의 행복은 아무리 완전하고 온전한 행복일지라도
그 약속 믿을 수 없고 확실치 않기에 그리하지 않고 그래서 행복하지 않은 걸까요?
아마 대부분이 그럴 겁니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믿을 것입니다.
순종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순종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하느님의 사랑을 믿을 때 순종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복을 주시려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을 때,
복을 주시겠다는 하느님의 뜻을 믿을 때,
그 뜻에 순종하고 행복의 길을 떠나겠지요?
믿음과 순종과 떠남의 행복의 길을 아브람처럼 떠나 복이 되어봅시다. 우리도.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