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남을 심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보고 그것을 빼내어야
형제에게 있는 티를 빼낼 수 있다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모습만 판단하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자신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남을 판단한다는 말씀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나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그래서 나에게도 허물이 있음을 알고 있다면
다른 사람의 허물에 대해
쉽게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나의 허물이 부끄러워서
그것에 신경 쓰기 바쁘지
남의 허물까지 참결할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조언과 판단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허물이 있다고 해서
남의 허물을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남의 허물을 말할 필요도 있습니다.
상대방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상대방의 모습을 알려주는 것도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판단으로 바뀌지 않으려면
말하는 사람 자신도
자기 안에 있는 허물을 어느 정도 인정한
상황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완벽하고 너는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접근하게 됩니다.
상대의 허물을 말한다는 상황은 같지만
서로 같이 실수하는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말하는 것과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관점에서 말하는 것은
듣는 사람에게 서로 다르게 다가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을 보지 않으면서
남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은
점점 힘을 잃어갑니다.
그의 말이 아무리 옳아도
의미 없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남을 심판하지 말라는 말씀은
우리 자신을 먼저 보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자신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을 돌아볼 자신이 없어서이기도 합니다.
나의 허물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힘이
내 안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모습을 덮고 또 덮습니다.
나를 볼 수 있는 힘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때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그렇게 될 때
남을 판단하기 보다는
조언하는 쪽으로 바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