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면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애써 일하며 약한 이들을 거두어 주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친히 이르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은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원들에게 한 연설의 후반부입니다.
그런데 모든 면에서 본을 보여주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하는데
교만하다는 느낌보다는 본을 보여 준대로 살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그중에서도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씀을
특히 더 명심하기를 바오로 사도는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합니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이유는 뭘까요?
한 마디로 줄 수 있으니까 더 행복한 것입니다.
줄 수 없는 것보다 줄 수 있는 것이 더 행복한 것 아닙니까?
받아야만 하는 사람보다 줄 수 있는 사람이 더 행복하지 않습니까?
돈으로 치면 줄 돈이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행복하지요.
그런데 돈이 있어도 줄 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은 있는데 줄 마음 곧 사랑의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한자어로 수전노(守錢奴)라고 하지요.
돈을 모을 줄만 알고 쓸 줄 모르는 돈의 노예입니다.
그러니까 주는 사람은 줄 돈도 있고 줄 사랑도 있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는 사람은 줄 수 있기에 행복하기도 하지만
줘야 받기에 행복하기도 합니다.
주지 않는 사람에게 아무도 주지 않고
줄 줄 모르는 수전노를 아무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렇잖습니까?
노예를 누가 사랑합니까?
돈의 노예를 누가 사랑합니까?
사랑이 없는 사람을 누가 사랑합니까?
제가 몇 번 얘기한 적이 있는데 제가 사윗감을 고른다면 전철을 타겠습니다.
그를 전철에서 몰래 관찰하는 것입니다.
앞에 노인이 탔는데 자리를 양보하는지 보겠습니다.
양보하지 않으면 사윗감으로 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연애 때는 애인을 사랑하는 것처럼 잘해주겠지만
결혼하고 나면 노인에게 한 것처럼 아내에게도 할 것입니다.
줘야지 받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이 간단하지만 확실한 행복 비결을
오늘 바오로 사도가 명심하라고 한 대로 우리는 명심할 것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